북한 국적 알고도 '제3국 위장업체' 통해 수출·금융 거래
북한 직원 수차례 "북한 언급 말라"며 구입처 숨길 것 요구
(서울·워싱턴=연합뉴스) 이준서 김경윤 기자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의 대북제재를 어기고 북한에 물품을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담배필터 판매업체가 수억원대 벌금을 내게 됐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시간) 전했다.
판매액의 갑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UAE 담배회사 '에센트라FZE'로부터 66만5천112달러(약 8억원)를 받고 기소를 유예해주는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북한과 거래를 막고 미국의 금융기관을 활용한 달러 결제를 금지한 미국의 북한 제재규정(NKSR)을 위반한 혐의다.
에센트라FZE는 영국계 생활소비재 업체 '에센트라'의 UAE 자회사로, 중국을 비롯한 제3국 업체에 담배 필터를 수출했다.
이번에 문제된 수출은 2018년 북한 측과 한 거래로서, 당시 에센트라FZE는 담배 밀수를 위해 북한 국적자가 설립한 위장업체, 이른바 유령회사(front company)에 수출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기소유예 합의문에는 에센트라FZE 담당 직원도 북한에 수출된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여러 유령회사를 통해 거래하자는 북한의 요구에 동의했다고 적시돼 있다.
실제로 이 직원이 북한 국적의 위장업체 측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북한 국적 직원이 수차례에 걸쳐 구입처가 북한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2018년초 한 회의에서 특정한 담배 필터 생산 능력에 관한 논의가 진행된 뒤 북한 국적 직원은 에센트라FZE 직원에게 "고객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언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알았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북한 직원은 재차 "내가 뭘 의미하는지 알지?", "그냥 중국이나 다른 곳을 언급하라. 계약은 다른 외국기업에 의해 서명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담당 직원은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에센트라FZE 직원은 나중에 북한 직원이 언급한 '우리나라'가 북한임을 확인해줬다고 한다.
북한 직원은 며칠 후 또다시 메시지를 보내 "목적지가 중국이라고만 말하라. 우리나라에 관해 언급하지 말라"고 재확인하기도 했다.
실제로 계약서에는 '중국'을 수출 목적지로 적시했다.
에센트라FZE 측도 대북제재 위반 사실을 시인하고, 해당 직원 2명에 경고 조처를 했다고 WP는 전했다. 이들 직원은 퇴사한 상태다.
판매 대금은 약 33만3천 달러로, 에센트라FZE는 2018년 9~12월 미국계 은행의 두바이 지점을 통해 세 차례 송금받았다.
한차례는 미 달러화로, 두차례는 제3국 통화로 이체됐다.
달러화 및 미 금융망 이용은 제재위반에 해당한다. 미 재무부는 주류 및 담배, 담배 관련 제품의 대북 수출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이 생산하는 '가짜담배'는 수뇌부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수단으로도 지목된다.
한편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기소를 3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합의 주체는 미국 법무부와 에센트라FZE다.
에센트라FZE는 향후 3년간 다른 직원의 비행을 보고하고 조사에 충분히 협력하며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로 약속했으며, 이를 준수하면 3년 후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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