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차관보 "휴스턴 영사관은 미국 연구결과 탈취의 거점"
미래 먹거리 수호전…대선 앞 트럼프 반중정서 자극도 반영된 듯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 정부가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요구한 명분은 '기술 도둑질'이다.
그러나 과격한 조치를 전격적으로 내리게 된 배경에는 첨단 미래산업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양국 간 기술패권 경쟁뿐만 아니라 오는 11월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전략도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이 미국 내 연구결과 탈취의 거점으로 파괴적 행동에 관여한 전력이 있다고 밝혔다.
스틸웰 차관보는 중국의 과학기술 탈취 시도 가운데 일부는 최근 6개월 동안 강도를 높였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려는 노력과 연계됐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술도둑질 주장의 명백한 증거는 거의 제시되지 않았으나 미국 정부는 총영사관 폐쇄가 국익 보호를 위해 정당한 조치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덴마크를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날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행동할지 명확한 예측을 제시하고 있다"며 "미국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영사관 폐쇄 조치의 명분으로 제시된 지식재산권 절도는 미국 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경제성장과 국제적 위상을 위협하는 중국의 대표적 불공정행위로 초당적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의약·반도체·통신·신소재 등 미래 첨단산업에서 전략적으로 세계적 기업을 육성한다는 중국의 산업통상정책을 기술 탈취와 보조금을 토대로 한 불공정 관행의 결정체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들어간 근본 명분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도 중국의 산업통상정책 개조를 중국과의 향후 무역협상의 핵심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비롯해 중국을 대표하는 다국적기업들에 미국 기술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출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수사기관도 기술탈취를 근절하기 위한 범정부 대책의 일환으로 중국의 산업 스파이를 잡아내기 위한 총력전에 들어간 지 오래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중국과 관련한 방첩 사건 수사가 10시간마다 1건씩 늘어나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의 기술탈취를 의심한 미국 수사당국의 사법처리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20일 스탠퍼드대 객원 연구원인 중국인 천쑹을 비자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작년 12월에는 중국인 암 연구자인 정자오쑹이 생물학 연구결과를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고, 올해 1월 보스턴대 대학원생 예옌칭은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계됐다는 점을 비자 신청 때 숨겼다가 수배되기도 했다.
기술 도둑질의 거점으로 지목된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에는 미국 대선을 100여일 앞두고 미국 내 반중 정서가 짙어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올해 5월 발표를 보면 미국인 66%가 중국에 비호감을 갖고 71%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불신하는 등 미국 내 반중 정서는 같은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고였다.
대선을 앞두고 표심에 더 민감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을 두고 정부를 겨냥한 부실 대응 논란이 일자 중국 책임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팬데믹 때문에 악화한 미국인들의 대중 여론에 편승, 대만의 민주주의와 홍콩의 자치권, 신장의 인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을 들어 전방위로 중국을 비판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미국 정부가 중국을 낙인찍어 비방하고 중국 사회체계에 정당하지 않은 공격을 가하는 데다가 중국 외교·영사 인력들을 괴롭히고 유학생들까지 위협하고 신문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대니얼 러셀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가 지식재산권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전략과 더 관계가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고 NYT에 말했다.
jang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