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정부, 자국민 일자리 보호위해 "난민, 아무것도 하지 마"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우리는 일도 하지 말고, 학교도 가지 말고, 숨만 쉬어야 해요. 아무것도 하면 안 돼요"
지난 12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서부 칼리데레스 난민촌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를 털어놨다.
인도네시아에 유입된 아프간 난민은 1만2천명에 이른다.
8천명은 유엔난민기구가 인도네시아 10여곳에 설치한 캠프에 수용됐고, 3천500명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정한 보고르 뿐짝 지역에, 나머지는 자카르타 안팎에 몇백명씩 모여 살고 있다.
연합뉴스 특파원이 찾아간 칼리데레스 난민촌에는 최대 1천400명이 모여살다 코로나 사태 이후 흩어지면서 현재 서른다섯 가족과 독신자 총 230여명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난민들이 "차라리 이민자 구치소에 넣어달라"며 노숙 시위를 벌이자 지역군사령부(Kodim)로 쓰던 빈 건물을 내줬으나, 식량·전기·수도 등 다른 지원은 일절 하지 않는다.
난민들은 아프간을 탈출하면서 가져온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가끔 한국인 선교사를 포함해 종교인들이 가져다준 생필품으로 연명하고 있다.
칼리데레스 난민촌 건물로 들어서자 공동체 대표 하산 라마잔(42)과 여러 명의 남성이 건물 곳곳을 안내했다.
1층에는 가족 단위 난민이 텐트를 치고 살고, 2층에는 독신자들이 산다.
건물이 비바람은 막아주지만, 전기도, 물도, 침대도 아무것도 없다.
난민들은 종이 박스로 유리창을 가려 햇볕을 막고, 휴대 버너로 음식을 해 먹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난민의 노동을 엄격히 금지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려 해도 인도네시아인들이 보자마자 신고하고, 실제 적발되면 추방당한다.
이 때문에 아프간 난민들은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별다른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
다만, 건물 출입구 경비와 어린이 교육, 구역별 청소 등 각자 최소한의 임무가 나뉘어 있다.
난민촌 대표 하산은 "인도네시아 정부도, 유엔도 우리를 버려두고 있다"며 "양측은 우리가 마치 공인 양 상대방 쪽으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하산은 "아프간 난민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전 재산을 털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탈출했다"며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유럽, 인도·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까지 목적지가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에 온 아프간 난민은 이곳에 정착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난민 지위를 얻은 뒤 유엔난민기구의 추천으로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로 이주하는 게 최종 목표다.
2015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에서 2∼3년 살면 제3국으로 떠날 수 있었지만, 각국이 난민수용을 제한하면서 지금은 통상 5년이 걸리고 10년 이상 기다리는 난민도 수두룩하다.
난민촌에서 만난 누리(27)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4천∼5천 달러를 주고 브로커가 이끄는 대로 아프간에서 인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를 거쳐 들어왔다"며 "나도 인도네시아에 혼자 들어온 지 7년째"라고 말했다.
아프간 난민들은 유엔난민기구의 전화 연락만 기다린다. 제3국으로 이주할 차례가 돌아오면 "00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를 받으라"고 통지하기 때문이다.
칼리데레스 난민촌에는 성인 남성 외 여성 50여명과 어린이 40여명이 있다.
이들은 아프간 생활이 너무 위험하고 고달팠기에 인도네시아 난민촌의 열악한 환경에도 감사해한다. 최소한 한밤중에 폭탄이 터질 위험은 없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난민 어린이들이 현지 학교에 가는 것도 허용하지 않아서 난민들끼리 자체적으로 아프간어와 영어 등을 가르친다.
영어 수업을 받다 눈이 마주친 아프간 어린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쳐다봤다.
아프간 난민들은 이슬람 신자라서 인도네시아 이슬람 신자들이 잘 도와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프간을 탈출한 난민들은 대부분 소수 시아파 무슬림인 '하자라' 족이다.
이들은 칭기즈칸이 1221년 서부 바미얀을 침공한 이래 아프간 땅에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으로, 탈레반이 인종청소 대상으로 삼았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샤피이 학파로, 수니파 쪽에 가깝기에 아프간 난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아프간 난민들은 "우리도 사람이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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