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터널에 갇힌 정유업계…'불황의 끝이 안 보인다'

입력 2020-08-30 07:47  

코로나19 터널에 갇힌 정유업계…'불황의 끝이 안 보인다'
'하반기는 믿었는데'…코로나 여파 7월 석유제품 수요 7.4% 급락
정유4사 회사채 발행액 작년 1년치 육박…70% 이상 빚갚고 세금납부
코로나 거리두기 강화에 3분기 흑자 전환도 물 건너갈 듯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던 정유업계가 하반기 들어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석유 수요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하반기 흑자 전환의 꿈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 '하반기 살아나나 했는데'…7월 석유 소비량 7.4% 급락
30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내수 기준 석유 제품별 소비량은 총 7천310만1천배럴로 작년 7월 7천893만2천배럴 대비 7.4% 급락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1∼7월까지 누적 소비량(7억1천703만4천배럴)이 작년보다 평균 3.6% 줄었는데 7월 한 달만 보면 감소폭이 2배 이상 큰 것이다.
정유업계는 그동안 하반기에는 코로나 충격에서 다소 벗어나 유가가 오르고 석유 수요가 회복되면서 상반기 최악의 적자를 일부 만회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하반기가 돼서도 수요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정유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품별로는 지난달 휘발유(7% 증가)를 제외한 대다수 석유제품의 소비량이 작년보다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유의 소비량이 작년 동월 대비 36.9% 감소했고, 선박 연료 등으로 쓰이는 벙커C유도 작년보다 8.1% 줄었다. 경유와 LPG 역시 작년보다 각각 4.6%, 1.6% 감소했다.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도 9.6% 감소해 석유화학 공장의 가동이 작년보다 위축됐음을 시사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재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이달에도 수요 증가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해외 항공 수요가 여전히 저조한 데다 역대 최장의 장마와 코로나로 휴가철인 '드라이빙 시즌' 특수가 기대 이하다.
최근 원유 정제마진(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것)이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2주 연속 플러스(+)로 전환했지만, 정유사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긴 역부족이다.
업계가 수익을 내려면 정제마진이 배럴당 4달러는 돼야 하는데 지난주 싱가포르 크랭킹 기준 정제마진은 0.6달러에 그쳤다. 휘발유 외에 경유나 등유, 항공유 등의 정제마진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제마진 상승은 미국에 불어닥친 쌍둥이 허리케인 여파로 멕시코만의 원유 생산시설 다수가 셧다운(폐쇄)되면서 공급 위축에 대한 우려로 유가가 상승한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석유수요가 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어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 거리두기 3단계 전환 땐 직격탄…"중유 조건부 면세 절실"
업계에는 이 때문에 당초 기대와 달리 3분기에도 흑자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지난 상반기에 낸 적자 규모는 5조1천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말부터 코로나 재확산으로 거리두기가 사실상 2.5단계로 강화된데 이어 최악의 경우 3단계까지 격상될 경우 정유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될 전망이다.
여름 특수가 예년만 못한 가운데 이동제한이 강화되면 추가적인 석유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미 이달초부터 항공유 가격은 두바이 원유보다 낮은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3분기가 오히려 지난 2분기보다 더 나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2분기는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평가이익 증가로 적자 폭을 줄였는데 지금은 지속적인 유가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연히 유동성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정유 4사가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3조4천억원으로, 작년 한 해 발행 총액의 90%에 달한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의 72%는 부채 상환과 세금 납부 등에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 4사는 특히 지난달 말에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유예받은 4월분 유류세 등 1조4천억원과 1조원이 넘는 6월분 유류세까지 두달 치를 한꺼번에 납부하면서 부담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기간산업인 석유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제 개편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일본·중국처럼 중유(석유 중간제품)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거나, 중유가 석유제품 생산의 원료로 사용될 때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미래통합당 추경호 의원은 최근 생산공정용 석유류(중유)에 개별소비세를 조건부 면세하는 내용의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은 오히려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해 흑자를 내는 등 돌파구를 찾았지만 정유사들은 그러한 유연한 사업 전환도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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