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위태롭게 방치된 베네수엘라 유조선…"환경 재앙 우려"

입력 2020-09-04 03:22  

바다에 위태롭게 방치된 베네수엘라 유조선…"환경 재앙 우려"
130만배럴 원유 싣고 기울어진채 떠 있어…침몰·기름유출 가능성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원유를 가득 실은 베네수엘라 유조선 한 척이 바다 위에 기울어진 채 위태롭게 떠 있어 선박 침몰과 기름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동쪽 파리아만 해상에 유조선 나바리마호가 1년 넘게 방치돼 있다.
2005년 건조된 길이 264m의 나바리마호는 지난해까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와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ENI의 합자회사 페트로수크레가 해상 부유식 원유 저장 선박(FSO)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미국 정부가 PDVSA에 제재를 가한 이후 페트로수크레가 생산을 중단하자 나바리마호도 1년 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배 위에 선원은 없으며, 저장 공간을 거의 채운 130만 배럴의 원유가 실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선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익명의 한 석유업계 관계자는 AP통신에 나바리마호가 오른쪽으로 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과도한 무게 탓에 14.5m가량 가라앉기도 했다고 AP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평형 유지 장치의 밸브가 고장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반정부 성향 베네수엘라 석유업계 노조의 에우디스 히로트는 바닷물이 새서 엔진룸에 침투했다며, 선박 내부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나바리마호가 아무런 조치 없이 이대로 방치될 경우 침몰해 기름 유출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1989년 알래스카만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던 엑손 발데스호 사고 당시 유출된 기름이 24만 배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 5배에 달하는 기름이 유출될 경우 엄청난 환경 재앙이 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물론 인근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카리브해 국가들의 해안을 오염시키고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ENI 측은 AP통신 등에 보낸 성명에서 일단 물 새는 문제는 해결됐으며, 현재로서는 선박의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침몰과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 나바리마호에 저장된 원유를 비워야 하는데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하지만 미국 제재가 걸려 있어 쉽지 않은 문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NI는 원유를 다른 선박에 옮겨 실은 후 이탈리아에 있는 자사 정유시설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밀린 배당금을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재 위반을 피하기 위해선 미국 재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ENI와 미 당국의 논의가 몇 차례 연기돼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노조 관계자 히로트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도 이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무관심을 비난하면서 "기름이 계속 선박에 남아있으면 언제라도 비극과 생태 재앙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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