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연구팀 심리실험 결과…"'빈곤의 덫' 또다른 사례"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불평등한 보상은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물론 이로부터 이득을 받는 사람까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 따르면 이 대학 심리·언어과학과 필립 게시아르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불평등한 보상에 따른 심리적 충격과 생산성 저하를 보여주는 심리 실험 결과를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PLoS)의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810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이미지 파일로 된 옛 요리책을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간단한 업무를 부여하고 이에 따른 수고비(0.24£·377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3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에게는 다른 참가자가 자신보다 수고비를 더 받거나 덜 받는다는 점을 차등 정도를 달리해 알려주고 일을 계속해 보너스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했으며, 일부 실험에서는 참가자의 감정 상태를 묻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실험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와 수고비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일을 계속하려는 의지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에는 다른 참가자가 자신보다 훨씬 더 적은 수고비를 받는다는 점을 알게 된 참가자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보상을 덜 받을 때뿐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이 부당하다고 인식할 때 일을 하려는 동기 부여가 줄어든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연구팀은 실험군에서 보상의 불평등이 커지면 참가자들의 불만족도 커져 일하려는 의지를 낮추는 것으로 이어졌다면서, 불평등 실험군에서는 이득을 보는 참가자들마저 다른 참가자의 수고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적인 결정이지만 일을 계속하는 것을 거부할 소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논문 수석저자인 탈리 샤롯 교수는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도' 상층부 사람들이 불평등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지는 더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득이 무작위로 결정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이득을 본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서 불평등이 특권층의 동기나 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임의적인 불평등 보상이 야기한 참가자들의 부정적 감정이 경제적 취약계층이 불안과 우울을 더 많이 느끼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문 공동저자인 옥스퍼드대학의 얀-엠마뉴엘 드 네베 박사는 "이번 연구는 임의로 경제적 불평등에 처한 사람이 일하려는 동기가 줄어들어 더 악화한 상황에 부닥치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빈곤의 덫'의 또 다른 사례를 보여줬다"고 했다.
게시아르즈 박사는 이와 관련, "경제적 약자들은 처음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로, 그다음에는 불평등한 보상에 대한 반응으로 동기 부여와 복지에서 이중 (소득) 감소에 당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같은 노력을 기울여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 때 열심히 하려는 동기 부여를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구조적 장벽과는 별개로 심리적 메커니즘이 경제적 취약계층의 고실업률과 낮은 대학 지원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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