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도하서 역사적인 평화협상 개시…2001년 후 줄곧 적대시
종교 국가 vs 민주주의…여러 이슈서 이견 불거질 듯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2001년 내전 발발 후 줄곧 서로 총을 겨눴던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반군 탈레반이 마침내 평화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양측은 12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역사적인 평화협상을 시작한다.
협상의 중요성을 드러내듯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까지 개회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간 숱한 변수를 딛고 정부 측과 탈레반이 얼굴을 맞대게 된 상황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평화 정착을 위한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슬람 율법에 충실한 '종교 국가'를 염원하는 탈레반과 서구 민주주의 체제가 기반인 아프간 정부 사이에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 오랜 '원수지간'인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아프간 전 영토의 90% 이상을 완전히 장악했던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무너졌다.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지목하며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을 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거부했고 미국은 그해 10월 공습을 단행했다. 탈레반 정권은 공습을 버티지 못하고 한 달여 만에 무너졌다.
이후 미국과 국제연합의 지원 아래 그해 12월 아프간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이런 배경 때문에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는 원수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평화협상도 간간이 시도됐지만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직접 협상을 거부했고, 정부 측은 "우리와 탈레반이 협상의 주체"라고 맞섰다.
2015년 7월 양측은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공식 회담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벌인 대형 테러와 탈레반 지도자의 사망 등이 겹치면서 흐지부지됐다.
지지부진하던 분위기는 지난 2월 말 미국-탈레반 간 평화 합의로 바뀌었다.
미국은 당시 14개월 내 미군 철군에 합의하면서 아프간 정부-탈레반 간 평화협상 개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탈레반 대원 포로 5천명과 탈레반에 잡힌 아프간군 1천명의 '포로 교환'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프간 정부가 포로 교환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이후 아프간 정부 내 갈등과 정부군-탈레반 간 전투 등이 겹치면서 협상은 미뤄졌다.
그러다가 정부 측이 마지막 남은 강경파 포로 석방까지 마무리하면서 이번 회담이 성사됐다.
◇ 권력 분할·여성 인권·정부 내 갈등…난제 수두룩
탈레반은 현재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탈레반은 현 정부와 권력을 나눠 가지려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정부 권력 분할 형태, 여성 인권 문제, 탈레반 조직원의 정부군 편입 등 여러 이슈에서 양측 간에 간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성 인권 문제는 국제단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주목하는 사안이다.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에 따른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에 여성의 삶을 심각하게 규제했다. 여자 어린이 교육 금지, 남성 동행하에서만 외출, 공공장소 부르카(여성의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 착용 등의 조치가 시행됐다.
지금 정부 수도 카불에 사는 여성 상당수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으며 화장한 얼굴을 드러내며 외출하기도 한다.
외신들은 이번 평화 협상이 이런 아프간 여성에게는 오히려 공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아프간 정부 내 갈등도 변수다.
이번 협상을 총괄하는 국가화해최고위원회(HCNR)의 압둘라 압둘라 의장은 지난해 9월 대통령 선거에서 아슈라프 가니 현 대통령과 맞붙은 정적이다.
압둘라는 투표 결과 발표 후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난무했다며 불복했고, 별도 대통령 취임식까지 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는 정부 내 수장과 평화협상 책임자로 권력을 나눠 갖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라도 갈등이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당장 협상단 21명 간의 이해도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탈레반이 꺼리는 여성도 4∼5명 포함됐다.
탈레반이 전투와 테러 등 폭력 행위를 중단할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탈레반으로서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정부 지분을 더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정부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시간에 쫓기는 미국…느긋하게 이슬람 국가 건설 꿈꾸는 탈레반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여러 이유로 인해 이번 협상은 느린 속도로 진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선 탈레반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은 채 시간을 버는 데만 집중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은 이미 주둔군 철수를 약속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천600명 수준까지 줄인 아프간 주둔 미군의 수를 단기간에 4천명으로 더 줄이겠다고 9일 다시 강조했다.
시간은 탈레반 편인 셈이다.
반대로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협상을 독려해 예상보다 빠르게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탈레반이 여러 핑계를 대면서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주둔군 일부를 남기기를 원하는 미국과 달리 탈레반은 외국군 전면 철수를 주장하고 있어 이 이슈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새로운 정부를 세우더라도 결국은 탈레반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한 탈레반 조직원은 "우리는 평화협상 결과에 관심이 없다"며 "최종적으로 아프간 전역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평화협상과 미군 철수가 마무리되면 새로운 내전을 통해 힘 빠진 정부를 뒤엎겠다는 것이다.
이를 틈 타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확장할 우려도 제기된다.
2014∼2015년부터 아프간에 본격 진출한 IS는 현지에 지부를 만드는 등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이슬람 수니파인 IS는 시아파를 배교자로 삼아 처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간 탈레반과 종종 대립해왔다.
미국으로서는 아프간에서만 주로 활동하는 탈레반보다는 국제적으로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는 IS의 세력이 강해질 경우 더 골치가 아플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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