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숙제 남기고 퇴임…참배로 보수·우익에 메시지
친동생은 방위상, 아베가 심은 모테기는 외무상 유임
"신약으로 건강 회복하면 아베 또다시 등판" 목소리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퇴임 사흘만인 19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한 의도가 주목된다.
보수·우익 세력을 결집해 개헌 등 미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른바 상왕(上王) 정치를 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참배 사실을 밝히고서 "총리를 퇴임한 것을 영령에게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퇴임 보고를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로 재선출된 후 여론과 정국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 중·참의원 선거에서 6차례 연속 대승을 이끈 아베의 정치 연륜에 비춰보면 이날 참배는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동으로 풀이된다.
'현직 총리' 신분을 벗어나기는 했으나 퇴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참배는 보수·우파 진영에게 집권 자민당의 역사관이나 정치적 노선을 재확인하는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극우세력은 물론이고 전몰자 유족 등 보수·우파 진영에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아베가 뒤늦게 이에 다시 화답한 양상이다.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를 면한 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의 외손자인 아베는 1차 집권기(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6일·366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痛恨)의 극치"라고 말할 정도로 야스쿠니신사에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2013년 12월에는 측근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참배를 강행했으며 파장이 커지자 이후에는 참배 대신 공물을 보내며 보수·우익 세력을 달랬다.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인 개헌을 숙제로 남겨두고 퇴임한 점은 정치적 노림수로 주목된다.
그는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못 한 것 때문에 '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느낀다고 말했으며 개헌이 이뤄지도록 "나도 한 의원으로서 앞으로도 힘을 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베는 개헌 동력을 만들기 위해 보수·우익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퇴임을 불과 닷새 앞둔 이달 11일 북한의 위협을 거론하며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 등 새로운 미사일 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하도록 당부하는 총리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은 탄도미사일 발사 시설 등 적국 영역 안에 있는 기지를 폭격기나 순항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해 파괴하는 능력으로 개헌과도 관련이 있는 이슈다.
퇴임한 아베는 안보·외교 분야에서 계속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어린 시절 기시 집안의 양자가 된 아베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岸信夫)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에서 방위상에 기용됐고, 아베가 외무상에 임명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가 스가 정권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스가 총리는 이달 12일 열린 일본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 외교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베와 "상담하면서 가겠다"고 말했고, 아베 역시 최근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교 특사 등의 형태로 스가 내각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스가 총리가 '아베 정권 계승'을 표방한 가운데 아베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아베가 정치적 구심력을 유지하는 방편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아베가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총리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9가지 구기 종목, 12개 리그의 경기력 향상 등을 도모하는 단체인 일본톱리그협력기구의 가와부치 사부로(川淵三郞) 회장은 3년이 지나도 아베가 68세라는 점을 거론하며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어 건강을 회복한 그 날은 재재(再再)등판도 가능하다"고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
극우 논객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는 아베의 퇴임이 "매우 안타깝다"며 "격동의 국제사회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길잡이로 아베 총리의 시점과 역량이 필요한 날이 반드시 또 온다"고 최근 주간지 주간신조(週刊新潮)에 의견을 밝혔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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