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 "잘 놀다가 뺨 맞는 기분…신고해도 제재 너무 늦어"
게임사 "실시간 대응은 어려워"…'처벌 근거 필요'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직장인 김모(29)씨는 최근 넥슨 모바일게임 '바람의 나라: 연'을 즐기다가 다른 이용자의 캐릭터 이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해당 이용자의 캐릭터 명은 '박원순의너란비서'였고 문파(길드) 이름은 '서울시장님의기쁨'이었다.
욕설이나 비속어가 아니었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퇴근 후 유일한 낙이 이 게임인데, 잘 놀다가 뺨 맞은 기분"이라며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것인데 왜 부적절한 표현으로 다른 이용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부적절한 게임 캐릭터 명은 최근 게임사들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게임 내 채팅은 욕설·비속어 사용이 금지돼 있고 인공지능(AI) 필터링 등으로 이용자 제재도 강화돼 과거보다 깨끗해진 상태다.
개별 이용자가 채팅을 전부 끄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그룹의 채팅만 보도록 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캐릭터 명은 제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 이용자가 캐릭터 명에 불쾌한 표현을 적고는 게임 내를 활보하면 다른 이용자들은 해당 캐릭터 명을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캐릭터 명을 만들 때 욕설·비속어를 담을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게임이 대부분이지만, 비속어 필터링을 피해 부적절한 표현을 담는 경우가 많다.
게임사들은 '부적절한 캐릭터 이름 신고' 기능을 도입해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부적절한 캐릭터 명은 필터링을 피해 교묘하게 짓는 경우이기 때문에 신고 담당 인력이 일일이 확인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실제로 김씨의 경우에도 '박원순의너란비서' 캐릭터 명을 보자마자 신고했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람의나라: 연'에서는 지난달 초등학생 납치·성폭행범의 이름을 이용한 캐릭터 명과 문파 명도 문제가 된 바 있다.
해당 캐릭터 이름 역시 극심한 2차 가해였는데, 당시에도 빠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아 게이머들 불만 민원이 쇄도했다.
다른 온라인게임 이용자 최모(19)씨는 "같은 반 여학생 이름을 캐릭터 명에 넣어서 성희롱한 사건이 있었는데 게임 측도 학교 측도 제재하지 않았다"며 "게임 캐릭터 명이 '1차 가해'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넥슨 측은 "하루에 수천 명 이상 신규 유저가 유입되고 있으며, 기존 수십만명의 유저도 캐릭터 신규 생성이 가능하다"며 "캐릭터 명을 일일이 실시간으로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넥슨 관계자는 "욕설·비속어뿐 아니라 정치, 지역감정, 성(性), 종교, 인종차별 등 사회문화적 분쟁을 조장하는 명칭이나 공공질서·미풍양속에 위배되는 명칭도 제재하는 중"이라며 "빠짐없이 대응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게임사가 악성 이용자를 형사 고발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부적절한 게임 채팅이나 캐릭터 명은 다른 이용자들의 즐거움을 크게 저해하기 때문에 게임사 입장에서도 암적인 존재"라며 "제재 이상의 조처가 가능한 법·제도가 있으면 게임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도를 넘고 있다"며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성폭력 2차 피해 방지법 TF'를 구성해 법안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고 최근 밝혔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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