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후보 꼽히던 시성성 장관…공식사유에는 함구
자산유용 논란 때 2인자…"교황이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교황청 '부동산 스캔들'에 연루됐다고 의심받는 최고위급 추기경이 24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청은 이날 저녁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72)의 시성성 장관 사임을 받아들였다"라고 발표했다. 시성성은 교회가 공경할 성인을 선포하는 시성(諡聖)을 관리·감독하는 곳이다.
베추 추기경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투표권 등 추기경으로서 권한도 포기했다. 나이를 고려하면 그는 앞으로 8년간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있었다.
베추 추기경의 사임은 매우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로이터통신은 "수년간 교황청에서 벌어진 일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일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BBC방송 등 다른 외신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거나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2018년 대주교에서 추기경이 되고 시성성 장관에 오르기 전까지 2011년부터 약 7년간 '교황청 2인자'인 국무원 국무장관을 지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교황 후보로도 거론됐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베추 추기경 사임 배경에 작년 불거진 영국 런던 고가부동산 매입 의혹이 있다고 짚었다.
교황청은 2014년부터 한 이탈리아 사업가가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해 런던의 부촌인 첼시에 있는 고가빌딩 지분을 매입한 사실이 작년에 알려진 바 있다.
당시 투자금은 국무원 자산이었는데 문제는 이 자산 상당 부분이 교황의 사목과 빈민구호에 사용되는 교황청 자선기금 '성베드로 성금'에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베추 추기경은 투자가 정당했고 잘못된 일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으며 바티칸경찰 수사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교황청 고위 추기경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추기경으로서 권한까지 포기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징계성'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교황청은 베추 추기경의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AP통신은 "그의 사임은 명백히 처벌"이라면서 "교황청에서 가장 힘 있는 관리가 돌연 사임했는데 교황청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에서 작년 교황청을 흔든 (부동산) 추문에 새 장이 열렸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추 추기경 사임 발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더는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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