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법 적용 단념해서는 안 돼"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로버트 리드 영국 대법원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흑인 및 소수민족 출신 대법관을 배출하는 등 법원 내 인종적 다양성이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리드 대법원장은 5일(현지시간) BBC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브렌다 헤일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퇴임한 뒤로 대법원장 자리에 올랐다.
리드 대법원장은 영국 대법관 12명의 인종적 다양성이 부족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에서 고등법원 이상의 고위법관 중 4%만이 흑인 및 소수민족 출신이다.
일반 법원과 심판원의 흑인 및 소수민족 출신 판사 비율은 8%와 12%다.
이는 2014년과 비교하면 각각 2%포인트(p) 늘어났지만,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일반 법원과 심판원 판사의 여성 비율이 각각 32%와 47%인 것과 비교하면, 성별보다 인종적 다양성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한 셈이다.
영국 사법부를 묘사하는 '진부한, 남성, 백인'이란 표현은 다양성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리드 대법원장은 언제쯤 흑인 및 소수민족 출신 대법관이 배출될 수 있을지를 묻자 "내가 6년 안에 물러나기 전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리드 대법원장은 최근 흑인 혼혈 여성 변호사가 법원에서 겪은 인종차별 행위에 대해 "매우 끔찍하다"고 말했다.
앞서 형사 및 가사 전문 법정변호사(barrister) 알렉산드라 윌슨(25)은 지난달 법원 보안요원과 서기, 다른 변호사로부터 변호사가 아닌 피고인으로 잇따라 오해받는 일이 발생했다.
윌슨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트위터에 올리고, 영국 법원 행정을 담당하는 법원·심판원 서비스(HMCTS)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리드 대법원장은 "윌슨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매우 재능있는 젊은 변호사"라며 "그녀에 대한 대우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드 대법원장은 법원의 판결을 정치적 목적을 띤 행동주의(activism)로 몰아가는 일부의 견해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나타냈다.
헤일 대법원장 당시인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 무효 판결로 큰 관심을 받았다.
앞서 존슨 총리는 지난해 10월 말 브렉시트(Brexit) 예정일을 앞두고 의회가 자신의 '노 딜'(no deal) 브렉시트 불사 전략을 막지 못하도록 의회 정회를 결정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과 브렉시트 반대 활동가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헤일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은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가 위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대법원이 정치에 개입했다고 비판했다.
리드 대법원장은 "특정 이슈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고 해서 의회가 제정한 법을 적용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면서 "그것은 법원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리드 대법원장은 전 세계 최고의 법원으로서, 영국 대법원의 판결이 다른 나라에서 인용되는 현재의 명성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법원과 의회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브렉시트 과정에서 정부 관련 법원 판결에 대한 반응을 보면 법원의 역할과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에서 나아가 법원의 동기에 대한 의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리드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어떻게 판결을 내리는지에 관한 의회의 궁금증을 함께 논의하는 방안을 하원의장실과 함께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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