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상회담 카드로 징용 문제 해결 압박…"모순" 지적도
아베, 시진핑 국빈방문 거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수뇌 교류해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여부를 협상 카드로 내걸고 한국이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시절 일본 측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뜻을 강조한 점에 비춰보면 유독 한국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셈이기 때문이다.
아베는 총리 재임 중인 2015년 3월 한일 정상회담이 장기간 열리지 않는 것과 관련해 참의원에 출석해 "만난다거나 만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협상카드로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과제가 있을수록 정상은 전제조건 없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해 한국 측이 정상회담 개최 자체를 협상 카드로 쓴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2015년 9월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우리나라(일본)는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 놓고 있다"며 "일한 양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책임을 갖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전제조건 없이 정상이 흉금을 터놓고 회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꿨다.
징용 판결 이후 양국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작년 6월 일본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는데 당시 아베 총리는 의장국이면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베 총리와 회담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는 견해를 직접 밝혔고 실무선에서 실현 방안을 모색했지만, 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측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일련의 흐름에 비춰볼 때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 대한 강경 노선으로 지지율을 올리려는 정치적인 판단 아래 회담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아베 전 총리는 13일 보도된 산케이(産經)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을 요구하는 이유에 관해 "나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수뇌 사이의 교류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려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기 후반에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조건 없이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스가 총리 역시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아베 노선 계승 방침을 부각했다.
일본 정부는 정상 간의 대화가 중요하다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대화 자체를 카드로 써서 상대를 압박하거나 특정 국가에 대해서만 대화의 문턱을 높이는 셈이다.
일본 정부가 대외적으로 외교 정책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국내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전략을 택할 수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양상이다.
교도통신은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시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반발한 중국이 정상회담을 일시적으로 보류하자 대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또 최근에는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하는 점 등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의 외교 태도가 "모순된다는 인상을 부정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도는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수용 가능한 조치를 한국이 강구하지 않는 이상 스가 총리가 올해 한국이 의장국을 맡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본 정부가 한국에 통보했다고 복수의 한일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13일 전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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