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에 총 쏜 대통령으로 남고싶지 않아"…즉각사퇴 거부 입장 번복
의회 의장이 대통령 권한 대행…새 총선 일정 확정 등 정국수습 나설 듯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총선 부정 논란으로 정국 혼란을 겪고 있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대통령(61)이 15일(현지시간)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제엔베코프는 이날 대통령 공보실 사이트에 올린 대국민 성명에서 "나는 권력에 매달리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 역사에서 피를 흘리고 자국민에 총을 쏜 대통령으로 남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야권을 대표하는) 총리와 다른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수도 비슈케크에서 떠나도록 해 비슈케크 주민들에게 평화로운 삶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전날 신임 야권 총리 사디르 좌파로프가 이끄는 새 정부 구성 명령에 서명했지만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자신의 즉각적 사퇴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이 시위대와 사법기관이 서로 마주 보고 달리며 충돌하는 형국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군대와 사법기관은 (대통령) 관저 보호를 위해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면 유혈이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사퇴 이유를 부연 설명했다.
제엔베코프는 전날부터 이날 아침까지 야권 대표인 좌파로프 신임 총리와 사퇴 문제를 논의했다.
좌파로프는 '국민의 요구'를 내세워 제엔베코프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지만, 제엔베코프는 곧바로 사퇴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혼란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면서 총선 재선거를 치르고 새 대선 일정을 잡고 난 뒤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다 야권의 사퇴 요구가 거세고, 자신이 버틸 경우 야권과 대통령 지지자들 간에 유혈 충돌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제엔베코프가 자신 사임하면서 대통령 권한 대행은 헌법에 따라 카나트벡 이사예프 의회 의장에게로 넘어가게 됐다.
비슈케크 시내에 모여 있던 좌파로프 총리 지지자 1천여명은 제엔베코프의 사임 발표에 환성을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기뻐했다.
야권의 요구를 받아들인 대통령 사임으로 키르기스스탄 정계는 의회를 중심으로 새 총선과 대선 일정 논의를 시작으로 혼란 정국 수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제엔베코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반발해 저항 시위를 벌일 경우 혼란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임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지낸 제엔베코프는 지난 2017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해 키르기스스탄 제5대 대통령직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이달 초 총선 이후 대규모 부정선거 논란이 일면서 야권의 선거 불복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퇴하게 됐다.
지난 4일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선 제엔베코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과 친정부 성향 정당들이 9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둔 것으로 잠정 개표 결과 나타났다.
하지만 야당 지지자 수천 명은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수도 비슈케크와 주요 지방 도시들에서 저항 시위를 벌였다. 총선 다음날인 5일부터 시작된 야권의 불복 시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cjyo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