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만기 다가오는 세입자 '집 빼'라고 할까 봐 노심초사
전세 구하기 힘들자 '눌러 않겠다'고 말 바꾸는 세입자도 많아
전세 낀 아파트 인기 없어…1억원 내려 매물로 내놓기도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전세 품귀와 전셋값 급등으로 전세난이 심화하면서 전·월세 시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씨가 마른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공인중개사에게 '성공보수'를 제안하고, 전셋집을 구경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뽑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집을 비우는 대가로 '이사비'를 요구하거나 퇴거를 약속한 뒤 말을 바꿔 '버티기'에 들어가는 세입자도 있어 임대차 계약 관련 분쟁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성공보수' 내걸고 전세구하고…'집 빼라' 전화올까 전전긍긍
18일 부동산 업계와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 따르면 최근 전·월세 계약과 관련한 각종 고민과 분쟁 사례가 인터넷 게시판에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A씨는 내년 2월 계약 만료 뒤 옮겨갈 집을 찾기 위해 같은 동네에서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 고민이다.
전세를 찾다가 지친 A씨는 중개업소에 전셋집을 구해주면 '성공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도저히 내 힘으로는 전셋집 찾기가 힘들 것 같아 부동산에 중개 수수료에 더해 성공보수를 챙겨주겠다고 했다. 서민들 입장에선 사실 중개 수수료를 꽉 채워 주는 것도 아까운데, 길에 나앉을 수는 없으니 궁여지책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넣었다.
B씨는 "전세 물건이 없어 중개업소 5곳에 내 번호를 주고 집이 나오면 바로 전화를 부탁했었다. 며칠 뒤 전세가 하나 나왔는데, 다른 손님들이 집을 보러 가는 중이라는 말에 마음이 급해져 집도 안 보고 계약금부터 넣었다"고 말했다.
B씨는 "계약금을 너무 적게 넣는 게 불안해 보증금의 20%를 먼저 보냈다"고 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전셋집을 보기 위해 9팀이 아파트 복도에 줄을 서고, 이후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5팀이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뽑은 사연이 알려졌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C씨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통보해 연말까지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데, 주변에 전세가 없고 전셋값도 한두 달 전보다 1억∼2억원 뛰어 스트레스다.
C씨는 "2년 전에는 비슷한 조건의 전셋집을 비교하면서 골라 왔었는데, 완전히 딴 세상이 됐다"며 "서울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 교통이 편한 곳에 계속 살고 싶었는데, 전셋값 오른 걸 보니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은 길어질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경기도 화성시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D씨는 "내년 6월 아파트 전세 계약이 만료인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 더 살고 싶지만, 집주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내세워 집을 빼라고 할까봐 매일 전화벨 소리만 나면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말했다.
◇ '나갈 수 없는' 세입자도 '나가달라'는 집주인도 딱해
임대인은 임대인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
경기도에 자가 주택을 보유하고 서울 성동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E씨는 "전셋집 주인이 딸과 함께 들어와 살겠다고 해 경기도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세입자가 다른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고 말했다.
E씨는 "세입자 상황에서 보면 인근 전세가 없고 전셋값도 1억∼2억원 올라 곤란한 것 같은데, 혹여라도 내 집에서 못 나가겠다고 버티면 오히려 내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상황이어서 요즘 세입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는 조건으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이사비를 요구한다는 글도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보인다.
한 임대인은 "계약 만료로 당연히 나가기로 한 사람이 전세난에 이사 가기가 힘들다면서 이사비로 1천만원 정도는 챙겨달라고 해 어이가 없었다"면서 "집을 안 빼면 소송으로 해결할 수야 있겠지만, 당장 내가 집에 못 들어가면 많은 것이 꼬이게 돼 울며 겨자 먹기로 500만원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매매 시장에서는 전세 낀 물건이 인기가 없고, 1억원까지 값이 내려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F씨는 "전세 놓은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놨는데, 계약 기간이 1년 남았다며 보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걸 빨리 팔아야 내년에 보유세 폭탄을 피할 수 있어 1억원 정도 싼 값에라도 팔아달라고 부동산에 말해둔 상태"라고 했다.
전세난에 지친 무주택자들이 공황 구매에 나서기도 한다.
부동산 인터넷 카페에는 최근 "전세 구하려다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매수하려는 데 괜찮을까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전세 매물도 없고 가격도 7억∼8억으로 터무니없이 높게 불러 영끌해서 매수하려는 예비 부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모아둔 돈과 부모님께 빌린 돈, 신용대출 4억원에 주택담보대출을 40% 받아서 9억원 정도의 집을 사려고 한다"고 썼다.
이 글에는 "성급한 구매는 자제하라"는 답글과 함께 "지금 같은 전세난이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며 매매를 권유하는 답글도 적지 않았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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