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철호 전 부위원장 '독점규제의 역사' 발간
"웬만한 사안 모두 고발한 공정위도 바람직하지 않아"
(세종=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전속고발제 폐지는 130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온 해외 독점규제법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라는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전관의 지적이 나왔다.
지난 8월 퇴임한 지철호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21일 발간한 저서 '독점규제의 역사'에서 미국과 일본, 독일, 한국 등의 독점규제법 역사와 의의, 시행착오를 폭넓게 조망했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만 도입된 전속고발제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는 책 발간 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법 제도를 바꿨고, 일본은 악질적인 경우에만 기업을 고발하고 있다"며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결국 검찰의 형사고발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형사고발이 공정거래 관련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며 "전속고발권 폐지는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자 시류에 거꾸로 가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그는 "공정위가 잘못했다면 지적하고 견제하면 될 일이지 검찰에도 경성담합 관련 고발권을 준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최초의 독점규제법인 '셔먼법'이 대법원판결까지 나야 기업 제재가 가능해 실효성이 떨어지자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금지명령 등 시정조치를 내리고 법무성은 입찰 담합 등 중대한 위반행위만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형태로 제도를 바꿨다.
지 전 부위원장은 이를 두고 "법 집행 흐름을 형사·사법절차가 아닌 행정절차로 이뤄지도록 만드는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전속고발제를 도입했는데, 일본은 2010∼2018년 사이 고발이 단 4건인 반면 한국 공정위는 2010∼2019년 사이 총 575건을 고발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법이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집행돼야 하며 특히 경제부처의 전문적인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제도"라며 "일본은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개입하는 경우 경제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전속고발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공정위는 웬만한 사안이면 모두 고발해왔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앞으로 고발이 더 늘어날 텐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2018년 8월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 기소를 받은 다음 이듬해 2월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6개월 동안 공정위 업무에서 배제된 바 있다.
그는 저자 후기에서 "부위원장으로 복귀하기 이전에 공직에서 퇴직해 중소기업 단체에 취업했던 적이 있다. 이 취업에 대해 검찰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기관장은 기소됐다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근거나 전례도 없는 업무배제를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배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여유 시간(?)에 이런저런 자료를 읽었고 그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다"며 무죄판결을 받고 업무 복귀를 하기 전까지 이 책의 원고를 대부분 작성했다고 밝혔다.
j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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