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한국전쟁 기원' 논란이 떠올리게 한 中동북공정

입력 2020-11-07 07:07  

[특파원시선] '한국전쟁 기원' 논란이 떠올리게 한 中동북공정
고대·근대·현대 등 한중간 역사논란 뇌관 곳곳에 있어
시진핑 "고고학은 중국몽 위한 정신적 힘"…'문화적 자신감' 강조



(선양=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달 자국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한국 내전에 미국이 무력으로 간섭했고,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났고 중국이 북한의 전쟁행위를 지원했다'는 한국사회의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을 중국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밝혔던 만큼, 한국에서는 거센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중국의 입장 수정 없이 지나가는 분위기이고, 중국 내 한국전쟁 관련 기념관들도 시 주석의 발언과 비슷한 입장을 계속 선전하고 있다.
불과 70년 전 한국전쟁을 둘러싼 이번 일은 중국이 한국 고대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 한 2000년대 초중반 동북공정을 떠오르게 했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흐지부지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때 거셌던 한국 내 동북공정 비판이 잠잠해진 가운데 중국에서는 현재 그 결과물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만리장성이 허베이성 산해관을 넘어 동북 3성과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을 통해 고대사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대표적 예로, 랴오닝성 박물관에 전시된 지도에는 고대 만리장성이 평양 부근까지 들어온 것으로 표시돼있다.
또 명나라 때 장성은 북중 접경인 랴오닝성 단둥(丹東)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지역에 장성 관광지를 만들고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랴오닝성 박물관은 부여에 대해 "한나라와 신하 관계를 유지했다"고 기술하고, 당나라 시기를 다룬 지도에서는 발해가 당의 관할하에 있었다는 의미인 '발해도독부'로 표기한다.
지린성 사회과학원의 모 연구원은 지난해 중국 내 강연에서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역 역사상 변경민족 정권"이라고 주장했고, 청중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고대뿐만 아니라 중국이 일제 시기 만주 지역 독립운동을 자국 역사로 편입하고 공산당 투쟁사 위주로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등, 한중 간에는 역사를 둘러싼 논란의 뇌관이 곳곳에 있다.



게다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를 해석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은 계속 강화되는 추세다.
중국에서는 시 주석 집권 이후 공산주의 홍색(紅色) 교육과 소수민족의 한족(漢族)화가 강조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미중 갈등 속에 중화 민족주의를 내세워 내부 결집을 다지려 하고 있다.
중국이 외부의 분열 시도를 우려하는 가운데, 자국 국경 안에 있는 56개 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보는 '통일 다민족국가론'에서 물러설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 주석이 9월 말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고고학 관련 집단학습 당시 한 발언이 눈길을 끈다.
시 주석은 "고고학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정신적 힘"이라면서 "중화민족의 역사와 중화문명의 보물을 전시하고 구축하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또 "고고학 성과에 대한 발굴·정리·해석사업을 잘해야 한다"면서 "국제 고고학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중화문명 근원탐구 공정', '고고학 중국' 등의 프로젝트를 잘 시행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중화 민족주의 강화를 위해 고고학을 비롯한 역사·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은 실제 최근 들어 국가적으로 '문화적 자신감'과 '문화 강국'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향후 한국의 시각과 부딪치고 논란이 될 경우, 한국에 어떠한 대응책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급한 시점이다.


bs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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