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설치 지역의회, '철거명령 철회' 결의안 채택

입력 2020-11-07 08:01  

베를린 소녀상 설치 지역의회, '철거명령 철회' 결의안 채택
미테구청에 압박으로 작용 전망…당국, 비문 수정안 제시하기로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 명령을 놓고 지역의회가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소녀상이 설치 기한인 1년간 존치될 가능성이 커졌고, 영구 설치를 위한 논의의 발판도 마련됐다.
베를린시 미테구 의회는 지난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소녀상이 예정대로 존치돼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처리했다. 소녀상의 설치 기한은 내년 8월 14일까지다.
결의안은 해적당 소속 구의원이 제출했다.
결의안은 "소녀상은 무력 충돌 시 여성 성폭력에 대한 논의에 생산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표결에는 37명이 참석해 28명이 찬성했고, 9명이 반대했다.
베를린 연립정부 참여정당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좌파당 등 진보 3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해적당 의원 2명도 찬성했다.
반대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과 친(親)기업성향인 자유민주당, 극우성향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의원들에게서 나왔다.
좌파당은 해적당의 결의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소녀상의 영구 설치를 권고하는 내용의 안건을 내놓았으나, 시간 관계상 이날 논의되지 못했다.
이번 결의안은 슈테판 폰 다쎌 미테구청장이 소속된 녹색당도 찬성했다는 점에서 구청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앞서 미테구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이 국제적인 전쟁 피해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 지난해 7월 설치를 허가했다.
소녀상은 지난 9월 말 미테 지역 거리에 세워졌다. 역세권으로 시민들의 이동이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설치 이후 일본 측이 독일 정부와 베를린 주정부에 항의하자 미테구청은 지난달 7일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베를린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현지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행정법원에 철거 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자 마테구가 철거 명령을 보류하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미테구는 일본 측과 코리아협의회의 입장을 반영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테구청은 현재 소녀상의 비문을 수정하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미테구청은 애초 철거 명령을 내리면서 비문의 내용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비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끌고갔고, 이런 전쟁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설명이 담겨있다.
미테구청은 이후 '성노예'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코리아협의회 측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유럽의회 결의안에도 여러 번 사용된 정당한 표현이라고 설명하자 물러선 것으로 전해졌다.
소녀상의 영구 설치를 주장한 좌파당 측도 전쟁시 여성 성폭력에 대한 보편적인 내용을 추가할 필요성을 제기한 상황이다.
미테구청은 이후 아직 구체적인 비문 수정안은 내놓지 않았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6일 "지역의회에서 아직 영구 설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진전을 이룬 것"이라며 "당국과 정당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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