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확정까지는 시간걸려 언론보도로 사실상 승리 결정
20년전 대선때 패배 인정했다 취소한 고어 후보 사례도 있어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의 11·3 대선 개표가 7일(현지시간) 닷새째로 접어들었지만 미국 언론은 승자 예측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핵심 승부처에서 박빙 대결을 이어가고 있어 섣불리 특정 후보의 승리를 선언하지 못하고 개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유력 언론들이 개표 상황을 집계하고 득표율 추이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승자를 먼저 예측했다. 대선 후보들도 언론이 승자를 결정하면 승리나 승복 연설을 할 정도로 언론 보도가 중요한 잣대였다.
이는 미국이 연방정부 형태다 보니 주 정부가 투표와 개표를 책임지고 있고, 이를 취합해 당선인을 확정하는 과정이 매우 길어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
미국은 11·3 대선에서 주별 선거인단을 선출하면 12월 14일 주별 선거인단 투표, 23일까지 연방의회 결과 송부, 내년 1월 6일 의회의 선거인단 개표결과 승인 절차를 거쳐 상원 의장이 당선인을 선언한다.
이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언론의 집계나 분석을 통해 승자가 사실상 결정되는 방식이 관행처럼 돼 있다.
유력 언론이 후보 간 우열이 확연한 주의 경우 지난 3일 투표 종료 후 개표 시작과 거의 동시에 특정 후보의 승리 선언을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미 언론이 올해 대선 예측에서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맞붙은 2000년 11월 7일 대선 보도의 악몽과도 연결돼 있다.
당시 언론은 자체 조사를 토대로 플로리다주에 대해 개표 초반 고어 우세를 예측했다가 경합 지역으로 변경한 뒤 나중에는 부시 승리로 보고 '부시 당선' 속보를 쏟아냈다. 플로리다가 두 후보의 당락을 결정할 핵심 승부처였기 때문이다.
고어 후보는 언론 보도만 믿고 부시 후보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후 플로리다가 초접전 양상이라 승자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고어 후보는 한 시간 뒤 다시 전화를 걸어 패배 인정을 취소했다.
결국 플로리다는 개표 결과 부시 후보가 1천700여표 차로 고어 후보를 이겼지만 격차가 0.5%포인트 이내일 경우 재검표에 들어가는 주법에 따라 '부시 승리'는 보류됐다.
이후 재검표를 둘러싼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그해 12월 12일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있고서야 부시 후보의 대선 승리로 마감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이번 대선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 간 초접전 승부가 벌어지다 보니 언론들로선 2000년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인 핵심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의 경우 바이든 후보의 우위 폭이 각각 0.5%포인트, 0.1%포인트에 불과하다.
조지아주 국무장관은 이미 재검표 입장을 밝힌 상태다. 바이든 후보가 0.6%포인트 차로 이긴 위스콘신주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재검표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애리조나는 아예 매체 간 예측 자체가 다른 상황이다. AP통신, 폭스뉴스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CNN,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은 아직 경합지역으로 분류했다.
CNN의 한 앵커는 개표방송 도중 새 대통령이 누군지를 빨리 알고 싶어하는 유권자의 희망을 알고 있다면서도 2000년 대선보도 사례를 소개한 뒤 신속보다는 정확성이 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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