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다시 표류위기…전문가들 "공항정책 혼란 우려"(종합)

입력 2020-11-17 17:41   수정 2020-11-17 18:18

동남권 신공항 다시 표류위기…전문가들 "공항정책 혼란 우려"(종합)
"정권마다 뒤집히며 장기표류…지역 간 갈등 다시 불거질 수도"



(세종=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20년 가까이 끌어온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이 또다시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17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낸 데 대해 전문가들은 국책사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으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신공항 재추진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이 다시 심해질 수 있다는 반응도 보였다.

◇ 부산시장 선거 앞두고 백지화…"국책사업 나쁜 선례"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검증 결과에 대해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짜 맞춰간 느낌"이라며 "그동안 부산·울산·경남에서 수없이 제기한 안전성 문제는 빼고, 김해신공항의 수용력 문제를 지적한 것은 원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재검토로 끌고 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새 활주로 건설을 위해 공항 인근 자연장애물의 절취 여부를 지자체와 상의해야 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대해서도 지엽적인 문제라고 허 교수는 지적했다.
허 교수는 "2016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연구용역을 진행할 때 자연장애물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검증위도 ADPi의 연구 결과를 완전 부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국책사업을 되돌리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정권마다 혼란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 내년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국책 사업을 되돌리는 것은 공항 정책의 대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그 피해는 결국 지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오락가락할 경우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지적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검증위에서 당초 연구용역을 수행했던 ADPi와 협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강 교수는 "2016년 ADPi 연구 결과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면 연구를 수행한 곳과 후속 협의를 당연히 진행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애당초 검증위는 김해신공항 계획을 배제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검증위의 검증 결과를 보면, 일반적인 공항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충족하는데 관문 공항의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연 동남권에 인천공항과 같은 또 다른 대표 공항이 필요한지, 과연 투 포트 시스템(Two Port System)이 필요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인천공항의 경우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고, 다른 세계 공항들도 확장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며 "미래 변화를 수용하기엔 제한적이라고 한 검증위의 검증 결과는 참 옹색하다"고 비판했다.
이영혁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는 동남권 관문공항은 24시간 운영하는 공항이 돼야 한다는 검증위의 지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가덕도에 24시간 운영 가능한 공항을 만든다해도 인천공항만큼 24시간 돌릴 정도의 수요는 없다"며 "미래 수요를 감안해 새로운 공항을 지어서 24시간 서비스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 평가했다.



◇ 신공항 재검토 불가피…후보지 선정도 '산 너머 산'
동남권 신공항 사업의 후속 진행 과정을 두고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합의한 신공항 입지 결정은 대체로 공정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신뢰할만한 경제적 근거도 갖추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렇게 추진된 김해신공항 방안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다시금 신공항 논의는 지역 간 갈등을 수반하며 혼돈에 빠질 우려가 있어 보인다.
김해신공항이 백지화되더라도 부산·울산·경남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덕도 신공항이 바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점도 향후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을 더 짙게 한다.
과거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김해신공항 안은 가덕도 안보다 모든 항목의 점수가 높았고, 특히 가덕도와 비교할 때 사업비·접근성·환경성 등에서 월등한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연구 결과 가덕도는 밀양에 이어 3등으로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당시 ADPi는 김해공장 확장에는 약 38억달러(4조4천억원)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또 밀양과 가덕도에 활주로를 하나 만들 때는 각각 41억달러(4조7천500억원), 67억달러(7조7천600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김해신공항이 부적합하다면 동남권 신공항은 다시 수요산출부터 시작해 후보지 선정·평가, 최종 입지 선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교수는 "검증위에서 대안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았고, 김해신공항이 부적합하다고 해도 가덕도로 바로 신공항 입지를 정할 수는 없다"며 "동남권 신공항 논의가 백지화 결론을 냈던 10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런 혼란은 막아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향후 검증 방법에 대한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황 교수는 "재검토를 해야 한다면 기존에 해온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검토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이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신공항의 타당성을 조사한다면 왜 그동안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를 살펴봐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조사를 한다면 왜 다른 방식을 취했는지, 결과는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두 가지 방식의 차이를 검토해보고 대안으로 거론되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 대해 같은 김해신공항과 동일한 잣대로 안전성·경제성·소음 문제 등을 비교해놓고 결과를 재산출해야 한다"며 "이번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공항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면 과연 누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2016년 김해신공항 안이 결정될 당시 연구를 수행한 곳은 프랑스의 ADPi였다. 이는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이해관계가 얽힌 대구·울산·부산·경남·경북 시도지사들이 외국 전문기관에 의뢰해 결정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ADPi에 의뢰한 연구 용역 비용만도 19억여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허희영 교수는 "이제 새로 후보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연구기관이 ADPi가 낸 것보다 객관적인 결론을 내놓을 수 있을지 굉장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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