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단커사태' 파장…40만가구 월세 내고도 한겨울 쫓겨날 판

입력 2020-12-03 14:37  

中 '단커사태' 파장…40만가구 월세 내고도 한겨울 쫓겨날 판
임대아파트 관리업체 유동성 위기에 집주인·세입자 갈등…
정부 구제 가능성…몸집 불리기 집착하는 업계 문제점 지적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베이징(北京)의 한 월세 아파트에서 사는 26세 직장인 샤오마이(小麥·가명)는 최근 월세를 받지 못한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연일 악몽을 꾼다.
억울하기 그지없는 것은 그가 월세를 안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샤오마이는 지난 8월 계약을 1년 더 연장하면서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미리 냈다.
1년 임대료를 한꺼번에 받아 간 단커(蛋殼·계란껍데기)아파트라는 임대 아파트 관리 업체가 지난 11월부터 돌연 집주인에게 월세를 주지 않아 생긴 일이다.
그는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단커아파트에 실망해 이 세상과 작별하려고 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순식간에 600여개에 이르는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의 사연은 '단커 사태' 피해자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사례로 중국의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

◇ 수도 끊기는 다반사…문 따고 들어와 난동까지
유망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아 올초 미국 뉴욕증시에까지 상장한 단커아파트가 무리한 사업 확장 끝에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40여만 가구의 중국인들이 샤오마이처럼 1년치 월세를 미리 내고도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일부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내쫓으려고 수도와 전기를 끊는 것은 물론,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 집기를 난동까지 부리는 일까지 생기면서 '단커 사태'는 중국에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장기 임대 아파트 관리 업체인 단커아파트는 집 주인들로부터 집을 빌려 세입자들에게 1년 이상 장기간 빌려주는 사업을 하면서 급성장했다
집주인으로서는 단커에 아파트를 빌려주면 인테리어부터 세입자 관리까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꼬박꼬박 월세를 입금해주니 편리했다.
젊은 1인 가구 중심의 세입자 사이에서도 단커아파트가 제공하는 세련된 인테리어의 집이 인기가 많았다.
최근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단커아파트는 중국 13개 도시에서 총 41만5천 채의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중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가운데 공실률이 올라가면서 단커아파트에 큰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단커아파트의 사업 모델은 복잡한 다중 계약을 통해 미래의 수입을 미리 당겨오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단커아파트 입주자들은 1년치 임대료를 미리 관리 회사인 단커아파트에 낸다. 그런데 단커아파트는 집주인에게는 매달 또는 분기별로 임대료를 지급한다.
이런 현금 흐름의 '시간 차'를 이용해 단커는 막대한 인테리어비와 광고비 등을 감당하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모든 세입자가 1년 치 월세를 내는 것은 큰 부담이기에 단커아파트는 협력 은행을 지정해 세입자들이 연리 10%의 1년 만기 대출을 받고 매달 은행에 월세처럼 원리금을 갚도록 사업 구조를 짰다.
결국 단커아파트는 자사는 아무런 위험 부담을 지지 않고 세입자들의 개인 신용을 지렛대 삼아 미래의 수입을 미리 당겨오는 식으로 사업을 벌여온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구조가 '폰지 사기'(다단계 사기)라고 지적한다.
차이전(蔡眞) 국가금융발전실험실 부동산금융센터 주임은 이번 사태가 나기 훨씬 전인 지난 5월 연구에서 "단커아파트가 아파트 월세와 대출을 연계시킨 행위는 폰지식 융자에 해당한다"며 "코로나19, 거시 경제 파동 속에서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집 인테리어 비용까지 떠맡아야 해서 단커아파트는 창사 이래로 단 한 번도 순이익을 낸 적이 없다. 올해 1분기에도 단커아파트는 12억3천만 위안(약 2천억원)의 적자를 봤는데 이는 작년 동기보다 4억위안가량 더 커진 것이다.
사업이 계속 안정적으로 확장해 공급 주택이 늘어나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성장세가 주춤하면 금세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임대 아파트 육성 지원하던 중국 골치…결국 정부 개입
단커아파트의 유동성 위기로 중국의 수십만 채 아파트에서 월세를 받지 못한 집주인과 월세를 미리 낸 세입자들의 다툼이 잇따르는 가운데 베이징에 있는 단커아파트 본사에는 연일 수백, 수천명의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몰려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주택 가격이 급등해 대안으로 임대 아파트 사업을 권장하던 중국 정부도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베이징·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의 주택 가격이 지난 10년간 배 이상 오르면서 청년 계층의 주거 문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임대 시장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중국에서 단커아파트를 필두로 한 유사 업체들이 수백 곳이 넘는다. 첸잔(前瞻)산업연구원은 작년 중국의 장기 아파트 임대 시장 규모가 1조7천300억 위안(약 29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혼란이 커지자 중국의 각 지방정부들도 결국 직접 개입에 나서고 있다.
상하이 주택관리국은 1일 성명을 내고 집 주인들이 강제로 세입자들을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선전시 주택관리국도 단커 측에 임대료를 제대로 낸 세입자들을 내쫓으려고 집주인들이 전기·수도 등 공급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주거라는 민감한 민생 문제가 걸려 사건의 파문이 워낙 큰 탓에 중국 정부가 단커아파트가 이대로 망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로이터 통신은 22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베이징시 정부가 관리하는 펀드가 단커아파트 측과 신규 자금 투자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단커 사태'로 수익성보다는 지나치게 몸집 부풀리기에 골몰하는 중국 스타트업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다시 한번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공유자전거 산업을 대표하던 기업인 오포(ofo)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작년 초 유동성 위기에 처해 이용자 1천만명의 보증금을 떼어먹었다.
또 중국에서 스타벅스를 능가하겠다고 호기를 부리던 루이싱커피도 커피 판매량 등 매출 규모를 크게 부풀린 것이 드러나 투자자들에게 수조원대 피해를 남긴 채 미국 증시에서 상장 폐지됐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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