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팔레스타인 문제 무시 어려워…미 대선 결과도 고려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북아프리카 모로코가 10일(현지시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아랍권에서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의 '맏형'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 8월부터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아랍국가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에 이어 모로코까지 4개로 늘었다.
이에 따라 사우디도 이스라엘과의 수교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이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힘을 합치고 완전한 정상화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분명히 그 시점이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쿠슈너 선임보좌관의 발언은 트럼프 미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우디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도 엿보게 한다.
미국 정부가 올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합의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만 아직 사우디는 신중한 행보다.
이스라엘과 미국 언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2일 사우디 홍해 도시 '네옴'을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급 인사가 회담하는 것으로 전해지기는 처음이고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 중이었다.
그러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타냐후 총리와 무함마드 왕세자가 외교관계 수립과 이란 문제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또 사우디 외무장관인 파이살 빈 파르한 왕자는 이달 5일 "우리는 항상 이스라엘과 완전한 관계 정상화에 열려 있다"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얻고 우리는 그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해결에서 진전이 있어야 이스라엘과 수교에 나설 수 있다는 조건을 단 것으로 풀이된다.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로서는 민감한 팔레스타인 문제를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사우디 정부는 2002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해법으로 '아랍 평화 이니셔티브'를 제시한 뒤 아랍권에서 지지를 받았다.
이 구상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경계를 기준으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수립해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미 트럼프 정부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등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면서 더욱 악화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수교를 "배신"이라고 규정하는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선 결과도 사우디의 고민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1월 취임할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팔레스타인과 대화를 모색하고 이란 핵 합의 복귀도 추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달 하순 WSJ 보도에 따르면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의 보좌관들은 "왕세자가 지금보다는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 후 관계 정상화 합의를 진행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가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중동정책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은 셈이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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