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라피시 6세대 약 2만 마리 인공진화 실험 결과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구온난화가 지속하면 동물의 진화 속도가 이를 따라잡지 못해 많은 동물 종(種)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성 전망이 나왔다.
노르웨이과학기술대학교(NTNU) 생물학 부교수 프레드릭 주트펠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열대어인 제브라피시(Danio rerio)를 대상으로 4년에 걸쳐 인공 진화 실험을 한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NTNU에 따르면 연구팀은 바다에서 잡은 제브라피시를 인공선택으로 6세대에 걸쳐 약 2만 마리를 키우며 고온내성 한계치가 진화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이는 내열성에 초점을 맞춰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진행된 가장 큰 규모의 인공진화 실험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수온 상승에 더 잘 견딜 수 있는 제브라피시 계통을 만들어 내고, 수온 상승에 대한 진화 적응력을 측정할 수 있었는데, 한 세대당 내열성 진화는 0.04도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런 진화 속도는 현재 많은 곳에서 물고기가 겪고 있는 온난화보다 느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문 제1저자인 글래스고대학의 레이철 모건 박사는 "지구 기온이 너무 빨리 올라 제브라피시가 가장 수온이 많이 오른 시기에 충분히 효율적으로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진화는 환경 조건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가 종내 다른 개체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하면서 변화를 축적해 종 자체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다.
바다에서도 수온이 올라가면 일부 개체는 죽거나 번식을 할 수 없게 돼 도태하고 이런 환경 조건에 적응한 개체만 살아남는 방식으로 진화가 이뤄진다.
특히 지구온난화는 평균 기온 상승과 함께 열파를 더 자주, 더 강하게 만드는데 이런 조건에서 생존하려면 열을 견디고, 높아진 수온에 순응하며 다음 세대에 이런 장점을 물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연구팀은 인공진화 실험을 통해 최악의 수온 상승기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 강할수록 새로운 수온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고온에 대한 내성이 길러지면 적응력이 일부 상쇄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물고기가 고온내성의 진화를 제한하는 강한 한계치를 갖고 있을 수 있으며, 수온 한계치에 근접해 있는 열대 어종은 기후변화로 급속히 오르는 수온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주트펠트 부교수는 "일부 제브라피시와 다른 열대 어종이 금세기 말에 지구가 겪게 될 기온에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현재 견딜 수 있는 한계에 이미 도달해 있는 일부 어종은 진화를 통해 구제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며, 슬프고 놀라운 이런 점은 지구온난화를 멈추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eomn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