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엉성하면 세포질 DNA 조각 늘어 '염증 환경' 조성
암세포 표면서 '면역 조절' 단백질 발견…저널 '캔서 디스커버리'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유전적 혼란을 확산한다고 생각한다.
암세포가 분열할 때 DNA 조각을 포함한 염색체 전체가 복제되는데 부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고 때로는 DNA 조각이 모두 사라지기도 한다.
암세포의 이런 염색체 불안정성(chromosomal instability)이 암의 공격성 강화와 연관돼 있다는 걸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MSK) 암 연구소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염색체의 안정성이 떨어질수록 세포핵에 있어야 할 DNA 조각이 더 많이 세포질로 밀려나는 게 문제였다.
면역 세포는 암세포의 이런 DNA 조각을 바이러스 침입자로 간주하고 위험 경보를 울려 염증을 일으킨다.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이런 염증 반응을 견뎌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사 가위(scissor-like)' 단백질도 발견했다.
MSK 암 연구소의 사무엘 바코움 박사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8일(현지시간) 저널 '캔서 디스커버리(Cancer Discovery)'에 논문으로 실렸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바코움 박사는 "어떻게 암세포가 (스스로 유발한) 염증 환경에서 살아남는지를 우리는 잘 몰랐다"라고 지적했다.
바이러스가 세포의 세포질에 들어오면 cGAS(두 개의 뉴클레오타이드가 고리 형태로 연결된 효소의 일종)가 달라붙어 cGAMP라는 분자 복합체를 만든다.
다량의 cGAMP는 세포 밖으로 이동해 주변 면역세포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그러면 면역세포의 STING 경로가 활성화해 바이러스 감염 세포에 대한 면역 공격이 시작된다.
cGAS, cGAMP, STING 등의 이런 연쇄반응을 면역학에선 cGAS-STING 경로라고 한다.
불안정한 암세포의 염색체(또는 DNA 분절)는,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와 똑같이 이 경로를 자극해 염증을 일으킨다.
어떻게 암세포가 이런 염증 환경을 견뎌내는지는 그동안 과학계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바코움 박사 연구팀은 앞서 암세포가 자체 cGAS-STING 신호의 유도로, 면역세포의 특징적 행동을 모방하게 된다는 걸 알아냈다.
암세포의 전이 능력이 향상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어서 이동하는 능력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연구에선 암세포의 ENPP1 단백질을 찾아낸 게 돌파구를 열었다.
이 단백질은 암세포를 뒤덮고 있다가 세포 밖으로 위험 신호를 전달하는 cGAMP 복합체를 잘게 분쇄했다.
이 과정에서 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염증을 완화하는 아데노신(리보 뉴클레오타이드의 일종)도 분비됐다.
생쥐 실험에서 ENPP1 단백질은 면역 반응과 암의 전이를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했다.
스위치를 켜면 면역 반응이 억제되면서 암의 전이가 증가했고, 스위치를 끄면 면역 반응이 활성화돼 전이가 줄었다.
연구팀은 인간의 암 조직 샘플에서도 ENPP1의 발현이 전이 증가 및 면역치료 저항과 연관돼 있다는 걸 확인했다.
ENPP1을 표적으로 삼으면 일석이조의 암 억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한다.
cGMP 수위를 높여 암세포 주변 면역세포의 STING 경로를 자극하거나 면역 억제 아데노신의 생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ENPP1이 암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것도 치료제 개발의 장점으로 꼽힌다. 다른 조직은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약물의 표적으로 삼기가 쉽기 때문이다.
몇몇 제약회사는 이미 암세포의 ENPP1 억제제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엔 바코움 박사팀이 설립한 회사도 포함된다.
바코움 박사는 "2018년에 연구를 시작해 매우 빠른 속도로 여기까지 왔다"라면서 "앞으로 1년 이내에 1상 임상시험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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