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지위 내줘 임시 대통령 근거 '흔들'…국제사회 지지 온도차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에 맞서 온 '임시 대통령' 후안 과이도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마두로의 국회 장악으로 과이도가 국회의장 지위를 빼앗기면서 과이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역시 흔들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베네수엘라 국회가 비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5일 출범한 데 대해 깊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5일 야권의 보이콧 속에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베네수엘라 국회의원 선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었으나 눈에 띄는 것은 EU가 과이도를 지칭하는 방식이었다.
EU는 성명에서 "EU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싸우는 모든 정치·시민사회 주체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며 "특히 물러나는 국회의 후안 과이도와 다른 의원들"과의 지속 협력 의사를 밝혔다.
EU는 그간 미국 등과 더불어 야권 지도자인 과이도를 합법적인 베네수엘라 수반으로 인정해왔는데, 이번 성명에선 퇴임을 앞둔 국회의원 중 한 명으로 표현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두고 "EU가 더이상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EU 외교관들은 과이도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중요한 친민주주의 인사 중 한 명이지만, 마두로의 국회 장악 이후 과이도가 임시 대통령을 자처할 근거가 사라졌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다만 또 다른 익명의 EU 관계자는 AP통신에 "EU 회원국은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인정한다"며 이번 성명은 새 국회의 비민주적 구성을 규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일 뿐 과이도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이도가 마두로 대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미국과 EU 등 서구국가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2년 전인 2019년 1월부터였다.
당시 국회의장으로 취임한 과이도는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 승리가 불법이라며, 대통령 유고시 국회의장이 대통령직을 맡는다는 베네수엘라 헌법을 근거로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5일 여당 주도의 새 국회가 출범하고 새 국회의장이 취임하면서 과이도는 공식적으로 국회의장 자리를 잃게 됐고, 임시 대통령 지위를 주장할 근거도 사라지게 됐다.
과이도는 기존 야당 주도 국회의 임기 연장을 자체적으로 결정했으나 베네수엘라 안팎에서 정통성을 인정받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지난 2년 동안에도 마두로 대통령이 군의 변함없는 충성과 우방의 지지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통치를 이어가면서, 국내에서 과이도의 '임시 대통령' 지위도 상징적인 수준에 그쳤다.
미국 국무부는 전날 "임시 대통령 과이도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난 국회"를 계속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미주 협의체인 리마그룹도 새 국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U와 달리 미국의 지지는 여전히 굳건해 보이지만,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책에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예상된다. 과이도 대신 마두로에 맞설 다른 인물을 찾을 수도 있다.
한편 미국과 EU, 리마그룹은 이번 성명에서 베네수엘라 위기 해결을 위해 공정하고 민주적인 대선과 국회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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