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가장 증여, 법인자금 유출 등…불법 '방 쪼개기' 임대사업자도
친인척간 부채 인정돼도 상환 여부 사후관리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소득이 거의 없는 20대가 고가 아파트를 취득하면서 구입한 집을 10억원에 전세를 내주고 받은 전세 보증금에다 차입금을 보태 구입 자금을 마련했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전세 세입자는 아버지였고, 나머지 자금을 빌려줬다는 채권자도 아버지였다. 게다가 '집주인' 아들은 세를 준 아파트에 '세입자' 아버지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이들 부자(父子)가 아파트 구입 자금을 사실상 증여하고도 전세 보증금과 차입 등으로 가장해 증여세를 회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관련 자료와 탈세 의심 정보 분석으로 포착한 탈세 혐의자 358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 대상은 ▲ 고가 주택·상가 취득 과정에서 편법증여 또는 분양권 '다운' 계약 혐의자 등 209명 ▲ 신고 소득이 미미한 데도 다수 주택을 취득한 증여 혐의자 등 51명 ▲ 현금 매출을 누락한 임대사업자와 법인자금을 유출해 주택을 취득한 사주 일가 등 32명 ▲ 국토교통부 등 관계 기관이 전달한 탈루 혐의자 66명이다.
전업주부 A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데도 수십억대 고가 주택을 사들였다. 과세당국은 A의 남편 B가 자신이 운영하는 법인의 자금을 유출하고 개인사업체의 매출도 누락한 자금으로 고가 주택과 상가를 사들이고, 아내의 주택 취득자금도 증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조사에서 이 부부의 부동산 취득 자금 출처를 정밀하게 조사할 예정이다.
임대사업자 C는 강남 인근 등 유명 학원가 일대에서 건물 2채를 불법 개조해 수십 개 방으로 쪼개 수험생들에게 방을 임대하면서 할인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하고 수입금액을 누락한 혐의가 포착됐다.
현금 소득을 누락하고 전업주부인 배우자와 해외 유학 중인 미성년 자녀에게 허위 인건비를 지급해 법인소득을 빼돌린 사설 주식 컨설팅업자 D도 이번 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국세청은 배우자·자녀 명의의 서울의 고가 아파트 취득 자금도 증여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 "대출 제한으로 부채로 가장한 편법증여 늘어날 가능성"
이번 조사 대상 중에는 주택 취득 자금을 특수관계인 등으로부터 증여받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았거나 현금 매출을 몰래 빼돌려 주택을 사들인 경우가 빈번했다.
국세청은 조사 대상자가 취득 자금을 친인척 등으로부터 차입했다고 밝혔어도 친인척의 자금 조달 능력이 불확실하거나 탈루 소득으로 의심되면 자금을 빌려준 친인척과 관련 법인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해 사업소득 누락과 회계처리 적정 여부까지 검증할 방침이다.
취득 자금이 차입금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부채를 자력으로 상환하는지를 부채 사후관리 시스템으로 계속 관리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앞으로 부동산 취득 자금 출처와 부채 상환 과정에 대한 검증을 더욱 강화한다고 예고했다. 앞서 작년 10월 법령 개정으로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내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이 3억원 이상 거래에서 모든 거래로 확대됐다.
국세청은 규제지역에 금융기관 주택담보대출이 제한돼 부채를 가장한 편법증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부채 사후관리로 증여 여부를 더 정밀하게 검증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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