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우리 국내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 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이다. 증거와 자료, 변론의 취지를 종합할 때 피고의 불법 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이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며 피해를 배상받지도 못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일제 강점기 때 폭력과 속임수로 위안부로 차출돼 학대에 시달렸다는 호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여러 건 있으나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2013년 8월 청구 조정신청이 접수된 지 무려 7년 5개월 만이다. 일본이 한국 법원의 사건 송달 자체를 거부해 조정이 이뤄지지 않자 원고들의 요청에 따라 법원은 2016년 1월 사건을 정식재판에 넘겼다. 재판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돼 배 할머니가 2014년 세상을 떠났고 공동 원고인 김군자, 김순옥, 유희남 할머니 등도 별세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늦었지만 이번 판결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엄중히 경고하고, 인권과 정의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또 다른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 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어서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를 내세우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의 적용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판단 역시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배상 문제가 매듭지어졌기에 국가 간 합의를 지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부정한다. 청구권 협정에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점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되고 2015년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무시한 졸속 합의라는 문제점으로 인해 두 합의에 정당성 결여에 따른 허점이 적지 않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위안부 합의는 법적 효력이 있는 조약이 아닌 정치·외교적 행위라는 특성도 지닌다. 여기에다 박근혜 정부 때 대법원이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부합하려고 사건 결론을 미리 내려 뒀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바 있다. 그간 우여곡절이 보편적 인권과 정의에 관한 사안은 정부 간 합의로만 될 일이 아니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빠진 화해와 치유는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이번 판결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준엄한 역사적 심판이다.
13일에 또 다른 위안부 피해 배상 판결이 나오는 등 당분간 한일 관계가 더 어려워지게 됐다. 징용 배상 판결은 일본 기업이 피고여서 우회로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위안부 배상 판결은 피고가 일본 정부가 되다 보니 해결이 훨씬 난해할 수밖에 없다. 판결 수용 불가로 즉각 반응한 일본 정부의 반발 강도는 갈수록 세질 전망이다. 정치권의 대표적 일본통인 강창일 전 의원이 주일대사로 임명된 뒤 회자한 돌파구 모색 기대도 일단은 힘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공교롭게도 한일 양국이 상호 대사 교체를 발표한 날 판결이 나와 대사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간극이 오히려 넓어지는 분위기이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출구는 있기 마련이고 찾아야 한다. 양국은 하루빨리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가자는데는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 개선이 고차방정식 풀기가 된 만큼, 강창일 신임 대사의 언급대로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해법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판결 취지를 살리며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배상을 보장하고 양국 정부의 명분도 살리는 쪽으로 해법을 찾는 노력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일본 정부는 고자세를 고수한다면 한국 내 반일 감정 악화로 협상 공간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접점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어떤 해소책이 시도돼도 그 바탕에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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