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 분열' 모드로 은닉해 있다가 치료 중단하면 재발
포유류 '배아 생존' 전략 차용…저널 '셀'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세포가 화학치료에 저항하는 건 과학자들에게 해묵은 골칫거리다.
암세포의 이런 치료 저항을 분쇄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화학치료 등으로 적대적 환경이 조성되면 암세포는, 자체 분열과 에너지 소모를 극도로 억제하는 일종의 '동면 상태'에 들어가 치료 효과를 무력화한다는 게 요지다.
이럴 때 암세포는 진화 과정에서 상당수 포유류에 보존된 생존 전략을 끌어들여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처럼 행동했다.
암세포가 포유류의 진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화학치료를 회피한다는 게 의과학 연구를 통해 입증된 건 처음이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저속 분열 상태로 숨어 있는 암세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암의 재발을 막는 치료전략도 제시됐다.
이 연구는 캐나다 토론토 소재 '프린세스 마거릿 암 센터'의 과학자들이 수행했고, 관련 논문은 7일(현지 시각) 저널 '셀'(Cell)에 실렸다.
연구팀은 배앙 접시(petri dish)에 분리한 인간의 대장암 세포에 화학 치료제를 투여해, 성장을 멈추고 영양분도 거의 쓰지 않는 '저속 분열' 상태로 유도했다.
화학 치료제를 쓰는 한 암세포도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
암세포는 저 에너지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100종 이상의 포유류에 보존된 '배아기 생존 프로그램'(embryonic survival program)을 이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고온이나 저온, 먹이 부족 등의 극단적 환경에 처했을 때 몸 안의 배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생존 전략이다.
그러다가 외부 환경이 좋아지면 성장을 멈췄던 배아가 정상적으로 발달을 재개하고, 암컷이 밴 새끼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 암 센터의 캐서린 오브라이언 박사(토론토대 의대 외과 부교수 겸임)는 "인간에겐 없는 포유류의 생존 전략을 암세포가 진화 과정에서 가로챈 것 같다"라면서 위험한 환경에 놓이면 모든 유형의 암세포가 하나의 통합된 방법으로 '저속 분열' 상태로 전환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화학 치료제를 써서 저속 분열로 유도한 암세포를, 성장 정지 상태의 생쥐 배아와 비교해 유전자 발현 특징이 매우 유사하다는 걸 발견했다.
저속 분열 암세포와 성장을 멈춘 생쥐 배아는 모두 자가포식(autophagy)이라는 세포 과정의 활성화가 필요했다.
영양분이 부족한 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단백질이나 다른 세포 구성 요소를 스스로 분해하는데 이를 자가포식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저분자 물질로 자가포식을 억제하면 암세포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확인했다.
자가포식이 멈춰 '저속 분열'의 은신처에 숨지 못한 암세포는 화학치료를 피하지 못했다.
오브라이언 박사는 "암세포가 저속 분열로 숨어 있는 상태, 다시 말하면 유전자 변이가 생기지 않아 아직 화학치료 등에 취약할 때 암세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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