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재·이란 외화난에 한국기업 800곳 돈 못받아 '속앓이'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4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선박을 억류하면서 한국의 은행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 해제 문제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받지 못한 미수금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현지시간)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란으로 수출한 뒤 이 대금을 받지 못한 국내 기업은 약 800곳으로 미수금 규모는 2억5천만 달러(약 2천800억원) 정도로 파악된다.
이들 이란 진출 기업이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면서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제재 복원으로 이란에 수출한 물품의 대금을 받을 수 있는 통로였던 원화결제 계좌의 운용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은 2010년부터 미국의 승인을 받아 국내 정유회사가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한 대금을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계좌에 원화로 예치했다.
이 자금은 이란으로 직접 송금되지는 않지만 반대로 이란에 물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이들 은행은 예치된 이란의 석유대금에서 수출 대금을 원화로 지급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제재 복원으로 이란중앙은행과 거래가 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이 커지자 이들 은행은 지급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자금 운용이 동결됐다.
한국의 물품을 수입했던 이란 거래처 중 일부는 이란중앙은행과 관련 시중은행에 수출 대금을 이란 리알화로 입금했지만, 한국의 은행이 지급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수금이 쌓였다.
한국의 은행 측에서 이란 은행이 발급한 신용장 수신·확인을 거부하면서 이란 현지 은행이 아예 한국과 거래한 결제 대금을 받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복원되자 이란 리알화의 시중 가치가 폭락한 것도 미수금이 불어난 원인 중 하나다.
이란중앙은행은 미국의 제재로 외화가 부족해지자 의약품, 필수품을 제외하고 일반 수입품에 대해서는 시중 환율보다 크게 낮은 공식환율을 배정하지 않았다.
리알화로 수입 대금을 내야 하는 이란 수입상들은 이란중앙은행이 공식환율을 원화결제용으로 제한적으로 할당하자 지급해야 할 대금 규모가 커졌고 이 때문에 수입 대금 지급을 미루기도 했다.
이 미수금의 상당 부분은 미국이 핵합의 파기를 선언한 2018년 5월 이전에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 측도 이 미수금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받지 못한 한국내 동결자금과 한꺼번에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한 한 이란 진출 업체 관계자는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수출 대금(약 70억달러)과 비교하면 전체 미수금 규모는 작을 수 있지만 이를 받지 못한 곳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문제 해결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이란의 동결자금 해제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간 외면받았던 국내 기업의 미수금도 함께 해소하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김혁(한국외대 페르시아어 이란학과 겸임교수) 한·이란협회 사무국장은 "미국의 제재 복원으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동결뿐 아니라 수년간 이란과 교역을 해 오던 우리 기업들도 수출대금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됐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에서 이란의 동결자금 해제는 이란 정부와 국민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에도 또다른 희소식이 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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