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구성 위한 정당별 협의 착수…과반 확보 여부에 관심
민주당·생동하는 이탈리아 지지 속 최대정당 오성운동이 변수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새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받은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4일(현지시간) 의회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당별 협의에 들어가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소수 정당 대표자들을 만난 데 이어 5∼6일에는 의석수가 많은 주요 정당 수뇌부를 접촉할 예정이다.
협의 일정은 일단 6일 오전까지만 잡혀 있으나 상황에 따라 다음 주까지 연장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내정자로서의 첫 행보인 정당별 협의는 '드라기 내각' 성사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새 내각이 공식 출범하기 위해선 반드시 상·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소속 정당이 없는 드라기 전 총재가 일할 수 있는 내각을 만들려면 의회 과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 정당이 드라기 전 총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 미묘하다.
드라기 전 총재에게 내각을 이양해야 하는 옛 연립정부 구성 정당의 속내가 특히 그렇다.
우선 원내 최대 정당이자 이전 연정의 핵심축인 오성운동(M5S)은 드라기 전 총재와 같은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가 이끄는 내각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크다.
비토 크리미 오성운동 대표는 3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전히 (정당이 중심이 된) 정치적 내각을 지지한다"며 "테크노크라트 내각에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드라기 내각 구성이 좌초할 경우 조기 총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턱대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현재 전국 지지율이 15% 안팎에 불과한 오성운동이 이대로 총선을 치르면 극우 정당 동맹(Lega)이 주도하는 우파연합에 정권을 내주는 것은 물론 원내 3∼4위 정당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배경에서 오성운동 내부에서는 일단 드라기 전 총재를 만나 정책 방향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성운동의 얼굴로 통하는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이 이날 드라기 전 총재를 지지할 것인지 여부를 둘러싼 당내 논란에 대해 "만나서 말을 들어보고 입장을 정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성운동의 연정 파트너였던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PD)은 연정이 붕괴한 충격에서 벗어나 드라기 전 총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당내 여론을 수렴하고 있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가 크다.
지난달 13일 연정 탈퇴를 선언하며 이번 정국 위기를 촉발한 생동하는 이탈리아(IV)의 경우 일찌감치 드라기 전 총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 상태다.
야권인 우파연합에서는 동맹과 또 다른 극우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조기 총선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가운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가 대오를 이탈해 드라기 전 총재에 대한 지지를 공개 선언해 주목을 받는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날 성명을 통해 "마타렐라 대통령이 드라기 전 총재에게 내각 구성권을 준 결정은 국가적 단합을 이룰 수 있는 거국 내각이 필요하다는 우리의 기존 입장과 일치한다"면서 "우리는 드라기 내각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정당별 의석수에 기초한 현재 판세는 드라기 내각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결국 핵심은 오성운동의 지지를 확보하느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성운동이 지지로 돌아선다면 드라기 전 총재를 중심으로 옛 연정 3당이 다시 뭉치는 결과가 되고 자연스럽게 상·하원 과반도 형성된다.
현 의회 권력 구도의 함수 관계를 인지한 드라기 전 총재도 오성운동을 설득하는 데 큰 공을 들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 연장선에서 드라기 전 총재가 전문 관료 중심으로 내각을 꾸린다는 당초 복안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지닌 정치인들의 입각을 일부 허용함으로써 '하이브리드'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연정 붕괴로 물러나게 된 주세페 콘테 총리는 이날 집무실이자 관저인 로마 키지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드라기 전 총재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기원했다.
콘테 총리는 "어제 드라기 전 총재와 만나 열린 마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면서 자신이 차기 내각 수립에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기 내각이 전문 관료로 채워지기보다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응집력 있고 탄탄한 '정치적 내각'이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콘테 총리는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연정 복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지난달 26일 사퇴했으나 IV의 반대로 재결합 협상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2년 7개월간의 행정수반 역할을 마감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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