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무함마드 왕세자 위상 강등…"카슈끄지 사건 거부감 드러낸 듯"
트럼프식 밀실 외교 청소…사우디, 중동 정책 급변 조짐에 긴장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이승민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 '재조정'을 암시하면서 대(對)중동 기조에서도 전임 도널드 트럼프 시절과 딴판이 될지 주목된다.
18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동의 무게중심을 사우디에 두려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중동의 맹방인 사우디 관계에서 급회전을 예고하는 대목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 관계를 재조정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의 상대는 살만 국왕"이라고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동급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지, 실권자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중동의 '계몽 군주'로 칭송받다 2018년 10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그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우디 국빈 방문 이후 중동의 맹주로 사우디를 밀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무함마드 왕세자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만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패권 경쟁국 이란을 마주해야 하는 사우디는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지지에 무기 구매로 화답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이런 기류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는 게 블룸버그 진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사우디를 '천덕꾸러기'로 묘사하며 인권 문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인 애런 데이비드 밀러는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좀 더 체계적이고 통상적인 채널"로 복귀할 것이라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은밀한 접촉을 주로 해온) 빈 살만 왕세자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CNN 방송도 이날 "백악관 대변인이 사우디에 물리적인 펀치만큼이나 날카로운 잽을 날렸다"고 논평했다.
또 의도적이든 아니든 카슈끄지 살해사건과 연루된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거부감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고도 덧붙였다.
백악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백악관 관계자는 사키 대변인의 발언을 두고 "오래된 외교 절차"로 돌아가겠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지도층에서는 동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양국 연대가 "강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실제로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 외교를 어떻게 바꿀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도 이란 핵합의를 성사하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소원해졌었다. 바이든 정부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핵합의를 복원한 다는게 기본 방침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국 고리가 아예 풀려버린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미 당국자들은 사우디의 이란 대응을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으며, 예멘 내전 종식을 위해서도 사우디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CNN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인권 보호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법 개혁을 지시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의 '인권 공세'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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