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석지영 교수 뉴요커 기고문서 램지어와 주고받은 대화·이메일 내용 공개
'10살 소녀 사례 잘못 인용' 지적에 램지어 "내가 실수했다…당황스럽고 걱정돼"
옹호교수들도 "실수 인정·논문 철회해야" 선회, 궁지몰린 램지어…파문 새국면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한 논문으로 파문을 일으킨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쓴 계약서가 사실은 없으며, 논문에 사례를 잘못 인용했다고 동료 교수에게 뒤늦게 시인했다.
이로써 해당 논문 공개로 촉발된 이번 파문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한국계인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는 26일(현지시간)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실은 '위안부의 진실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램지어 교수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실토했다면서 램지어 교수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직접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자신과 나눈 대화에서 "한국인 위안부가 작성한 계약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매춘업자'와 '예비 매춘부' 간 계약행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학계에선 그가 계약 문제를 언급해놓고서도 정작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작성한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와의 대화에서 "한국인 여성의 계약서를 확보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고 시인한 뒤 "당신도 못 찾을 게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 언급된 10살짜리 일본 소녀의 사례를 자신이 잘못 인용했다는 점도 석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인정했다.
램지어는 '오사키'란 이름의 10살짜리 일본인 소녀의 증언을 논문에 등장시켜 계약이 자발적이며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논문에서 "오사키가 10살이 됐을 때 위안부 모집책이 300엔의 선급금을 제안했다"라면서 "오사키는 그 일이 수반하는 것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모집책은 그를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에이미 스탠리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등은 램지어 교수가 인용한 원서를 보면 실제로 이 소녀는 "우리는 이런 업무일 줄 모르고 있었다. 믿기 어려울 만큼 끔찍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돼 있다고 반박해왔다.
램지어 교수는 이러한 반박 주장을 접한 후 "당황스럽고 걱정이 됐다(puzzled and troubled)"라고 토로하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실수했다"라고 석 교수에게 이메일을 통해 시인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 2명의 서한을 자신에게 제시했지만, 정작 이들 역시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문서를 읽고 입장을 바꿨다고 밝혔다.
매리 엘리자베스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당초 램지어 교수의 연구에 대해 "어마어마하다"라고 평가했지만, 이후 석 교수에게 보낸 글에서 "램지어는 반박 입장에 철저히 답하고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석 교수가 전했다.
데이비드 와인스타인 컬럼비아대 교수 역시 당초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술지 국제법경제리뷰(IRLE)에 게재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역사학자들의 반박 주장을 읽고 "게재를 철회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돌아섰다고 석 교수가 밝혔다.
석 교수는 기고문에서 "학문적 자유에는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할 책임이 수반돼야 한다는 강한 여론이 형성됐다"라고 지적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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