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독립운동가 이창신의 필명으로 작성된 미공개 시

입력 2021-03-01 22:25  

[전문] 독립운동가 이창신의 필명으로 작성된 미공개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김정훈 교수 번역본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독립유공자이며 소설가로 알려진 이창신(1914∼1948)이 필명 이석성(李石城)이 작자로 된 미공개 일본어 시(詩)가 공개됐다.
이창신의 아들 이명한(89)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이 유품 속에서 원고를 발견했고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수개월에 걸쳐 분석했다.
일본 출판사인 토요미술사출판판매가 시 전문 월간지 '시와 사상'(詩と思想) 3월호에 이를 실었다.
김 교수는 일본 사상가를 통해 제국주의를 극복할 이론을 받아들인 이창신이 탄압받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일본어로 시를 남긴 것으로 추정했다.
다음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국문으로 번역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의 전문.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태양은 폭군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동에서 서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
이런 분위기에 역사는 유전(流轉)하는 것인가

광음(光陰)은 영원히 흐르고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리고 또
삶과 죽음은 순식간에 왔다 사라지는 것
지금 우리는 그걸 슬퍼하는 게 아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을 줄이야…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무정(無精)한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인류 최고의 이상 ××××주의를 위해서는
설령… 이 생목이
당장 날아갈지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아…
우리의 전선에서 가장 앞서고 가장 용감한
말라를 잃을 줄이야…

아아!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동지의 70여 년 투쟁은
  ―인류의 낙원을 건설하려고
  정의의 검은 깃발 치켜올린 투쟁은―
얼마나 격렬하고 통렬했던가
추방과 감옥, 그리고 빈곤과 병마…
허나 동지는
언제나 용감하지 않았는가?
말라는 열정의 사나이―태양 같았던 대상
―모든 걸 사랑하는
  자유 평등한 사랑의 명성(明星)―

허나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철과 같은 의지의 인간! 열정을 불태우던 사내는
지금 목숨이 끊어져
로마의 한구석에 오랫동안 누워있다

  아아! 이지(理智)로 빛나는 그 투지
  말라테스타는 눈을 감았다

나는 말라를 본 적이 없다 또 알지 못한다
허나 나는 알고 있다
그의 정신은 지금
더 강력히 되살아나
―지배계급에 대해 모두가 증오의 마음으로―
―희망에 빛나는 자유 코뮌(공동체)―
고귀한 검은 깃발을
단단히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아아!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동지의 가슴에 타오르는
고귀한 이상은 어찌하여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는가
나 지금 동지의 죽음과 함께
굳은 신념 더욱 강해져
자유를 위해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맹세한다…

아아! 동지들이여!
열렬한 의지를 품은 전 세계의 동지들이여!
그대들은…
말라테스타의 장렬한 죽음의 길을 뒤따라
일어서자!
자유 코뮌 건설을 위해―
자유·평등·박애의 수호를 위해―
그리고 안락한 사회…만인의 행복이 성취될 그 날을 맞자!  

1932년 8월
구고(舊稿) 중에서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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