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감사원이 5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 수립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에너지 전환 로드맵·각종 계획 수립·원자력 진흥위원회 심의 등 3개 분야, 6개 사항에 대해 관련 법률과 법원 판례, 법률 자문 결과 등을 토대로 검토했으나 위법하거나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정갑윤 전 의원 등 547명은 2019년 6월 에너지 관련 최상위 정책인 에너지기본계획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하위 정책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먼저 수정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것은 위법이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이 문제에 대한 감사를 결정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 1월에야 감사에 착수했는데 두 달 만에 신속하게 결론을 내렸다. 감사원은 "하위계획이 상위계획 내용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위법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에너지기본계획이 다른 에너지 관련 계획을 법률적으로 기속하는 상위계획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과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이 연루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감사 방해, 증거 인멸 등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의 개별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아직 진행되고 있으나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 자체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이로써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감사는 청구 사유부터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정 전 의원 등은 2014년 수립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이 2035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 목표치를 29%로 정했는데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말 수립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그 비중을 2030년까지 23.9%로 낮춘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하위 정책이 상위 정책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2019년 6월에야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함으로써 원전을 감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은 정부에 따라 일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5년마다 수립하는 에너지기본계획을 새 정부가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의 재량권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정책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에너지기본계획은 강제성이 있는 법령이 아니라 비구속적인 행정계획이다. 청구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새 정부가 새 정책을 수립하더라도 자칫 거의 임기 내내 이와는 동떨어진 전임 정부의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번 감사가 다소 무리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론이 나오기 전부터 일부 여권 인사들이 감사원은 물론 최재형 감사원장 개인에게까지 공격을 가한 것은 더더욱 잘못된 일이다. 감사원은 공무원 사회의 부패나 불법·편법의 싹을 미리 찾아내 도려냄으로써 정부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상식선에서 볼 때 그리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라도 일말의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면 감사를 통해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도 감사원의 역할이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권위를 훼손하는 언행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감사원이 이번에도 그렇고, 지난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감사에서도 정책의 추진 과정과 절차에 대한 감사라고 누차 밝혔는데도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하고 과민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감사원의 기능 위축으로 정부 내의 감시와 자정 기능이 약화하면 그 피해는 해당 정부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하고 자중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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