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요즘 미국 언론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을 조명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84세 태국계 남성이 아침 산책을 하다가 공격을 받고 숨진 사건 이후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뉴욕 경찰에 지난해 접수된 아시아계 겨냥 증오 범죄는 28건이라고 합니다. 2019년 3건에 비해 많이 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해 9건이 접수됐습니다. 2018년 4건, 2019년 6건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된 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난해 3월부터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폭력 및 괴롭힘 신고를 받는 사이트 'AAPI에 대한 혐오를 중단하라'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2천800건 넘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71%는 언어적 공격, 9%는 물리적 폭력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중국계가 41%로 가장 많았고 15%가 한국계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베트남계와 필리핀계가 각각 8%와 7%였습니다.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 있을 가능성도 큽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거나 신고가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아시아계 연방의원들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함께 지난달 19일 회견을 열어 대책 추진 방침을 밝혔습니다.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의 증가는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고 전 세계 사망자 1위의 오명을 쓰게 되자 중국 책임론 제기에 주력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커진 미국인들의 불안이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데 일조한 셈입니다.
코로나19가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퍼져나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긴장의 수위가 치솟았던 지난해 봄에 저 역시 길에 나서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워싱턴DC 당국의 지침에 따라 생필품 구입을 위해서만 외출했지만 혹시라도 그 짧은 시간에 봉변을 당하는 것 아닌지 신경 쓰였습니다.
임기에 따라 몇 년만 머무는 저 같은 경우도 이런데 미국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는 혐오와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 일일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19 백신 5천만 회분 접종을 기념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망·확진자 1위인 미국에서 5천만 회분의 접종이 이뤄진 것만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백신이 코로나19의 공포를 조금씩 거둬가면서 혐오까지 거둬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종차별이 뿌리 깊은 미국에서 코로나19가 몰고 온 또 하나의 걱정거리입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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