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시위 중심지의 바케다노 동상, 복원 위해 일시 철거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지난 2019년 격렬했던 칠레 시위 사태를 보도한 사진들에서 자주 등장한 이미지 중 하나는 말을 타고 있는 한 늠름한 남성의 동상이다.
수도 산티아고의 시위 중심지인 이탈리아광장 한가운데 서서 시위를 내려다봤던 이 동상이 잠시 모습을 감추게 된다.
11일(현지시간) 칠레 일간 라테르세라 등에 따르면 문화부 산하 국가기념물위원회는 이탈리아광장에 있는 마누엘 바케다노 장군 동상을 일시 철거해 복원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이것이 예방적인 조치라며, 시민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바케다노 장군(1823∼1897)은 19세기 말 칠레와 볼리비아·페루가 싸운 태평양전쟁에서 활약한 전쟁 영웅이다. 그의 동상은 1928년부터 93년간 광장을 지켰다.
동상이 있는 도심 이탈리아광장은 2019년 10월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이 촉발한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의 주 무대였다.
시위대가 시위 구호나 페인트로 덮인 동상 위로 올라가 깃발을 흔드는 모습은 칠레 시위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대규모 시위가 잠잠해진 이후에도 이탈리아광장에선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졌고 동상의 수난도 계속됐다.
급기야 지난 5일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상 말의 다리를 자르려고 시도한 후 동상에 불을 붙였다. 이어 8일엔 동상을 파괴하겠다는 협박도 날아들었다고 라테르세라는 전했다.
결국 당국은 동상이 추가로 훼손되는 것을 막고, 여러 차례 임시로 보수했던 동상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일시 철거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동상 방화 이후 칠레 군은 성명을 내고 "비겁"하고 "역사에 무지한" 행위라며 강한 어조로 규탄하기도 했다.
단지 동상이 시위대에 모이는 장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난을 겪는 것은 아니다.
바케다노 동상이 원주민들을 억압한 칠레 엘리트 계층을 상징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1973∼1990년 군부독재를 경험한 칠레에선 군의 존재는 억압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이날 "바케다노 장군의 태평양전쟁 전과를 기리고 영웅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동상을 수리 후 그 자리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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