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 '무기' MMORPG·확률형 아이템…시대 바뀌며 '독'으로 작용
법제화 논의, 흑백논리로 변질 우려…소비자·개발자 목소리 들어야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한국 게임에 불만이 많은 게이머들이 많은 것 같아. 결론부터 말할게. 그럼 하지 마!"
게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즐겨 한다면 이 '짤'(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그림이나 영상)을 본 적 있을 것이다.
2014년 10월 게임 커뮤니티 '루리웹'에 올라온 '우리나라 게임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에게'라는 만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작성자는 자신을 게임 개발자라고 소개하면서 "한국 게임은 현질(유료 아이템 구매) 요구가 지나치다거나 독창성이 없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그런 게 싫으면) 하지 말라"고 표현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게임 개발자들도 당연히 사업성보다 작품성이 뛰어난 게임을 만들고 싶지만, 독창적인 게임은 마니아층조차 외면하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었다.
최근 확률형 아이템의 존폐가 업계 화두가 되면서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말이 나온다.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없도록 선을 긋자면, 최근 일부 게임에서 드러난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옹호한 이는 없었다.
그보다는 한국 게임 전반의 수익 모델(BM)이 '아이템 뽑기 장사'로 굳어진 현실을 바꾸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익명을 요구한 여러 개발자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 게임의 현실은 이렇다.
가정용 오락기(콘솔 게임)가 먼저 발달한 미국·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발판 삼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게임이라는 것을 산업화했다.
MMORPG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소통하고, 무리를 지어 교류하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와 닮아 있었다.
한국인에게 MMORPG가 잘 맞았고, 한국이 MMORPG라는 게임의 한 기둥을 세웠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여러 MMORPG가 성공했고, 국내 게임 개발자들은 자연스레 'MMORPG 전문가'로 성장했다.
기존에 있던 게임사에서 현업 노하우를 쌓은 개발자들은 자신이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나갔다.
그런데 시장은 MMORPG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도는 여전히 낮았고, 돈줄을 쥔 투자자들은 수익성이 입증된 MMORPG만을 원했다.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처럼 독창적인 패키지 게임을 내놓는 개발자도 있었다.
그러나 패키지 게임은 불법 복제로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불법 복제가 판치는데 이를 단속해야 할 당국은 무관심했다.
독창적인 인디 게임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도 전무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개발자는 결국 MMORPG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게임 산업 자체는 커지면서 성공한 MMORPG를 가진 기업은 글로벌 대기업이 됐다.
대기업이 될수록 개발보다는 사업 부서의 목소리가 커졌고, 국내외 투자자들의 입김도 거세졌다.
개발 한 번 안 해본 경영인이 게임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결국 돈을 버는 방법은 아이템 뽑기였다.
문방구 앞 장난감 기계처럼 단순했던 확률형 아이템은 언젠가부터 전문적인 수학·통계학 역량이 투입되는 고도의 사업 모델로 바뀌어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게임이 살아남으려고 손에 쥐었던 확률형 아이템은, 지나고 나서 보니 청동기 사이에서 찾아낸 철기 무기였다.
그러나 인류와 전쟁의 역사가 입증하듯, 강력한 무기는 독이 되기도 했다.
최근의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개발자들은 입을 모은다.
"문제인 것은 맞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입법부가 공론장이 돼야 한다.
몇몇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공론장에 올랐다.
그런데 확률을 공개할지, 확률형 아이템을 없앨지 등 협소하고 흑백논리에 가까운 논쟁만 반복하는 모양새다.
게임이 '사회악'이라는 구시대적인 시각도 다시 등장했다. 게임법 개정안 입법이 정치적 공작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지금의 논의가 한국 게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흐려지는 모습이다.
게임을 실제로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 목소리에 집중할 때다.
우선 소비자 목소리를 들어 확률형 아이템이 소비자를 기만했는지 꼼꼼히 조사해야 한다. 당국의 개입과 기업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정부와 국회는 중소 게임 개발자들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제도가 바뀌고 여론이 출렁이면 생업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중소 사업자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정부와 국회가 게임을 실제로 '만드는' 사람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일부 게임사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가 아니라, 진짜 개발자들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실제 산업 현장에 가닿는 법·제도를 만들 수 있다.
"한국 게임이 싫으면 하지 말라"던 7년 전 루리웹 게시글의 베스트 댓글은 "네, 그래서 안 하고 있습니다"였다.
게임업계와 게이머 사이 신뢰는 이미 무너진 것 같다.
이를 회복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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