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개정도 한몫…당국 "거래소로부터 가상화폐 보유현황 주기적 보고받아"
(세종=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는 호화·사치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종합소득세 27억원을 체납했다. 최근 국세청은 A가 병원에서 나온 수입을 39억원어치 가상자산(가상화폐)으로 은닉한 사실을 확인하고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그의 가상화폐를 압류했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이를 현금으로 인출할 수 없게 되자 A는 체납세액 전액을 현금으로 납부했다.
# B는 특수관계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거액을 증여받고도 증여액을 축소 신고해 증여세 26억원을 체납한 상태였다. 국세청은 B가 가상화폐로 숨긴 1억원을 찾아내 현금화 채권을 확보했다.
국세청은 국세 체납자 가운데 A와 B처럼 가상자산을 보유한 2천416명을 찾아내 모두 약 366억원을 현금으로 징수하거나 채권으로 확보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체납자들이 최근 1년 새 가격이 급등하고 거래도 크게 늘어난 가상화폐를 재산 은닉수단으로 활용해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체납자가 은닉한 가상자산을 강제징수(옛 체납처분)한 것은 정부 부처 중 처음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지난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과 대법원 판결 등으로 재산으로서 가상자산의 지위가 분명해진 점이 한몫했다.
가상자산 보유자의 실명 은행계좌는 가상자산 매입 또는 매도할 때 현금이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다. 가상화폐를 보유한 상태에서는 금융계좌를 조회해도 보유 현황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국세청은 가상자산 거래소들로부터 체납자의 가상화폐 보유 현황을 수집·분석해 강제징수에 나섰다.
국세청 관계자는 "수사기관 등이 가상자산 자체를 몰수하고도 가상자산을 보유한 코인지갑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지 못하는 등 이유로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국세청은 가상자산 자체가 아니라 소유자가 거래소에 대해 가진 출금청구채권 또는 반환청구채권 등을 가압류했다"고 설명했다.
체납자인 소유자가 가상화폐를 팔 경우 가상화폐 거래소에 매각대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는 권리를 차단했다는 뜻이다.
국세청의 가압류로 가상화폐를 현금화할 수 없게 된 체납자들이 압류를 풀기 위해 현금으로 체납액을 내거나 가상화폐를 처분해서 밀린 세금을 냈다.
국세청은 현재까지 납부를 이행하지 않은 체납자와 25일까지 납부 일정을 협의한 후 적정한 시점에 매각해 체납액을 징수할 계획이다.
◇ 가상화폐 시세 가압류 때의 2배로 뛰어…"징수효과 더 커질 것"
체납자 C는 경기도에 있는 부동산을 48억원에 매각했지만 양도소득세 12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다가 가상자산 12억원어치를 보유한 사실이 이번에 과세당국에 발각됐다. C씨는 가상자산을 매각해 체납한 양도세를 전액 현금으로 납부했다.
국세청이 거래소를 통해 체납자의 비트코인 잔고를 파악한 시점은 올해 1월이다. 국세청은 당시 비트코인 시가를 기준으로 가압류를 설정했다. 비트코인의 현 시세(7천만원 선)는 가압류 시점의 2배로 뛰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자 가운데 일부는 가상자산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판단했는지 사례 A처럼 가상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해 세금을 냈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국세청은 최근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강제징수의 실효성이 더 커지리라 기대했다.
국세청은 이번 강제징수 대상 가운데 222명에 대해서는 자산 은닉 혐의를 추가로 포착해 추적조사 중이다.
고액·상습체납자의 은닉 재산을 아는 국민은 국세청 웹사이트(www.nts.go.kr), 국세상담센터(☎ 126)로 적극적으로 제보해달라고 국세청은 당부했다. 제보가 징수로 이어지면 제보자에게 징수금액의 5∼20%에 해당하는 포상금을 최대 20억원 지급한다.
국세청은 내년부터 가상자산을 이용한 소득·재산 은닉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2022년부터 가상자산으로 발생한 소득(기타소득)에 과세가 시작되므로 당국이 거래소로부터 가상화폐 보유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받기 때문이다.
tr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