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시민 시위로 '피노체트 헌법' 폐기 돌파구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다음달 11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제헌 의회 선출 투표를 5월로 연기하자고 28일(현지시간) 제안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피녜라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연기를 제안한다면서 의회에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제안한 새로운 선거일은 5월15∼16일이다.
칠레의 최대 현안은 제헌 의회 구성에 이은 새 헌법 제정이지만, 신속한 백신 접종에도 최근 변종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칠레의 현행 헌법은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정권(1973∼1990년) 시절인 1980년 제정됐다.
피노체트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 부딪혀 1988년 국민투표로 연임하지 못하고 약속대로 1990년 퇴진했지만 이후 들어선 파트리시와 아일윈 정권(1990∼1994년) 역시 피노체트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칠레에서는 군부 독재의 유물인 헌법을 개정하자는 여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이 이어졌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계기를 찾지 못한 개헌 운동은 2019년 10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사회 개혁 시위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심한 칠레의 경제 양극화와 고물가의 근본 원인으로 이른바 '피노체트 헌법'을 지목하고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를 기반한 현행 헌법이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근거가 됐고, 이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것이다.
시위 발발 1년 뒤인 지난해 10월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개헌이 결정됐다.
현행 헌법의 폐기는 칠레 역사의 암흑기인 피노체트 독재와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진전이기도 하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4월 선거로 제헌 의회를 구성, 1년간 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2022년 국민투표로 최종 승인된다.
남녀 동수로 모두 155명을 뽑는 제헌 의회에는 3천300명이 입후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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