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점령 옹호하는 대동아공영권 상세 소개…비판의식 부족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30일 검정을 통과한 일본 고교 교과서에서는 일본이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일으킨 가해 행위를 희석하거나 모호하게 다룬 표현이 두드러졌다.
연합뉴스가 이날 역사 교과서를 확인해보니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진출'이라고 기술했음에도 검정을 통과한 사례가 꽤 있었다.
예를 들면 시미즈(淸水)서원 역사총합(종합)은 만주사변이나 중일 전쟁 등을 다룬 코너에 '일본의 대륙 진출'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데이코쿠(帝國)서원의 역사총합 역시 만주사변 등에 관해 '중국 대륙 진출'이라고 표기했다.
1995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사죄했는데 이런 평가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진출'은 1982년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용어"라며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1982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위험한 징표"라고 의견을 밝혔다.
시미즈서원 교과서는 중일전쟁 첫해인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난징(南京)을 점령한 것을 다루면서도 포로와 민간인을 마구잡이 살육한 난징 대학살에 관한 설명은 싣지 않았다.
데이코쿠서원 교재는 난징학살을 소개하기는 했으나 "사망자 수를 포함한 실태의 전체상에 관해서는 조사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모호하게 기술했다.
희생자 수에 관한 통설이 없다는 이유로 숫자를 아예 생략해 결과적으로 사건의 잔학성을 제대로 알 수 없게 한 셈이다.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시절 난징학살의 희생자 수를 기재했던 많은 교과서가 검정에서 수정 지시를 받았는데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출판사 측이 애초에 희생자 규모에 관한 구체적 설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다이이치가쿠슈샤(第一學習社)는 "희생자 수에 관해서는 십수만 명 이상이라는 설, 4만 명 전후라고 하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정확한 숫자를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측은 30만 명이라고 하고 있다"며 다양한 견해를 두루 소개해 이와 대비됐다.
시미즈서원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한 것을 기술한 대목에서는 '대동아공영권'을 소개했다.
대동아공영권은 1943년 11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당시 일본 총리가 아시아 지역 점령지 등의 대표를 모아서 도쿄에서 대동아회의를 열고 발표한 대동아 공동선언에 담긴 개념이다.
이는 아시아 민족이 서구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뭉쳐 대항하자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식민지나 점령지가 독립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안된 것이며 역사적 배경을 비판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제국주의·군국주의 옹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도 시미즈서원 교과서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표방을 서구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할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 일본에 협력하는 지도자도 있었다고 기술했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반도 민중의 반발 등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점령지, 전장이 된 아시아 여러 지역의 인적, 물적 피해는 심대"했다고 서술하기는 했으나 양적인 측면이나 전체적인 표현 등을 고려할 때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미흡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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