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재건축 안전진단…오세훈이 뚫을까

입력 2021-04-23 05:30   수정 2021-04-23 07:31

'난공불락' 재건축 안전진단…오세훈이 뚫을까
정부·여당 '집값 불안' 들어 기준 완화에 부정적
전문가 "정부·서울시 머리 맞대고 해결책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오세훈 서울 시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정부에 친 SOS(긴급 지원 요청)인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역대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대표적인 규제 카드이자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다. 진보 정권은 집값 불안의 진원인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틀어막기 위한 수단으로, 보수 정권은 공급 확대를 위한 솔루션으로 안전진단을 이용했다.
오 시장이 자신의 선거 공약인 '스피드 민간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이 관문을 넘어야 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 안전진단 기준, 정권 따라 오락가락
오세훈 시장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오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에 공식적으로 건의문을 발송했다.
재건축 안전진단에는 기초자치단체의 1차 정밀안전진단과 광역자치단체의 2차 정밀안전진단이 있는데 국토교통부가 정한 2차 정밀안전진단 기준이 너무 엄격해 이를 완화하지 않고는 오 시장이 구상한 민간 주도 아파트 재건축은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현행 기준이 주거 환경이나 설비의 노후화 등 주민 실생활에 관련된 부분보다 구조 안전성에만 치우쳐 사실상 재건축을 원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제도는 무분별한 아파트 재건축을 억제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도입됐다. 예컨대 총점을 100점(100%)으로 하되 구조안전성과 주거환경, 시설 노후도, 비용분석에 각각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역대 정권은 건물 자체의 내구력인 구조안전성의 가중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풀거나 조였다.
예컨대 구조안전성 가중치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50%까지 올라갔다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는 40%, 재건축 규제를 확 풀어버린 박근혜 정부에서는 20%까지 내려갔다.
부동산 정책 기조를 공급보다는 수요억제에 맞춘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이를 다시 50%로 높였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구조안전성의 가중치가 50%라는 것은 건물이 주저앉기 전까지는 재건축하지 못한다는 뜻"이라면서 "이를 적어도 30% 이하로 낮춰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에 숨통을 터야 한다"고 했다.



◇ 대못 뽑기에 나선 오세훈…집값 급등에 기대 난망
정부·여당이 오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2일 정책조정 회의에서 "실제로 오 시장이 (재건축을) 언급한 노원구, 양천구, 강남구, 영등포구를 중심으로 상승 폭이 최대 2배에 달한다"고 날을 세웠다. 스피드 공급을 외치며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언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과 정부가 검토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나 세제 등도 최우선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기초해 추진하겠다"고 밝혀 오 시장의 안전진단 기준 완화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실제 집값 오름세는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셋째 주(19일 기준) 서울의 주간 아파트 가격은 재건축 기대감으로 0.08% 올라 지난주(0.07%)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재건축 호재가 있는 노원구는 0.17% 올라 서울에서 가장 아파트값이 크게 뛰었고, 강남구(0.10%→0.14%), 서초구(0.10%→0.13%), 송파구(0.12%→0.13%) 등의 오름폭이 가팔랐다.
오 시장의 건의에 대해 문 대통령도 "쉽게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하면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고, 부동산 이익을 위해 멀쩡한 아파트를 재건축하려 할 수 있다. 그러면 낭비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 재개발을 추진하지만, 민간 재개발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 안정조치만 담보되면 얼마든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누구도 시장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퇴짜를 놓은 것으로 읽힌다.
정부는 2·4 공급대책으로 제시한 공공 재개발, 재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주도의 재건축을 용인할 경우 정책의 후퇴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거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노후 아파트들의 재건축을 언제까지 막기는 어려운 만큼 정부와 오 시장이 타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주거 환경이나 생활 수준의 변화에 발맞춰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권에 따라 정치적으로 오락가락해선 곤란하며 기준을 투명화, 객관화해야 한다"고 했다.
건물의 안전성에는 심각한 문제가 없더라도 배관이 썩어 녹물과 벌레가 나오거나 난방이 어렵고, 벽에 금이 가 물이 새는 아파트를 방치할 수는 없으니 재건축의 숨통을 터야 한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나 늘어나는 용적률의 일정 부분을 기부채납 받아 공공 분양이나 임대로 돌리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 만큼 정부와 오 시장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kim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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