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에 들킬까 봐 손전등 켜고 수술…불복종 참여 의료인 179명 기소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쿠데타 후 우리는 매일 시민들이 흘린 피를 봅니다. 눈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으로 괴롭습니다."
미얀마 인권을 위한 의사협회와 15개 의·치·약대 학생연합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기구들에 참상을 전하고, 의미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23일 미얀마 인권을 위한 의사협회가 트위터 계정에 게시한 의료인 공개서한을 보면 올해 2월 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의료인들이 겪는 고통이 막대하다.
이들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으로서 쿠데타 발생 후 부상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수없이 접한다"며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무력함과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이어 "제때 치료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음에도 군경은 의도적으로 (반 쿠데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목표로 삼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환자를 가로채고, 부상자들을 죽음 앞에 방치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시민들을 치료한다는 이유만으로 군경이 매일 의료인들을 잡아가고, 구급차를 가로막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의사들이 군경의 눈을 피해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 아래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9일 양곤 인근 바고 지역에서 군경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대에게 실탄은 물론 박격포 등 중화기를 사용해 80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군경은 며칠 동안 바고 중대형 병원을 출입구를 모두 막아 부상자 치료와 시신 수습을 가로막았다.
의료인들은 군경이 시민을 죽여 놓고는 유족들에게 시신 반환료까지 받아내는 야만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은 "테러리스트들(군경)이 바고에서 숨진 영웅들의 시신을 돌려주는 대가로 12만 짯(9만6천원)씩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인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치료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이들은 "우리가 하려는 일, 생명을 살리는 것은 지구상 어떤 법에 따르더라도 불법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지금 미얀마에서는 인도주의적 임무를 수행함에도 숨어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 증거를 수집하고 있지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연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장 최악의 장면은 세상에 숨겨져 있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미얀마 의료인들은 마틴 루서 킹의 명언인 '어디서 발생하든 불의는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다친 시위대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서한을 마무리했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지난주부터 매일 의료인들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있으며 21일까지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한 의료인 179명이 기소됐다고 전했다.
미얀마의 의료인들은 쿠데타 발생 초기부터 집단 진료 거부, 저항의 상징인 빨간 리본 달기 운동, 거리 시위 참여 등으로 반 쿠데타 시위를 지지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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