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키 갈등부른 106년전 아르메니아 집단학살…"150만명 사망"

입력 2021-04-25 04:11  

미-터키 갈등부른 106년전 아르메니아 집단학살…"150만명 사망"
바이든, 터키 반발에도 집단학살 공식 규정…터키와 갈등요인 더해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과 터키가 106년 전 발생한 아르메니아인 학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이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하자 터키가 강력 반발하며 외교적 마찰음을 키우고 있다.
이 사건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 시절이던 20세기 초 오스만제국 내 아르메니아인이 학살과 추방 등으로 인해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일을 말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9세기 말 오스만제국에 거주하던 약 2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민족주의적 열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쿠르드족이던 오스만제국 내 비정규군의 탄압으로 인해 1894∼1896년 사이에 수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됐다.
1차 대전이 터진 후 오스만제국이 러시아군과 싸울 때 다수의 아르메니아인은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를 결성했고, 이에 오스만제국은 꼭 106년 전인 1915년 4월 24일 수백 명의 아르메니아 지식인을 체포해 살해했다.
오스만제국은 같은 해 5월 아르메니아인의 대규모 추방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학살 또는 사막에서 기아와 탈진으로 15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3년 오스만제국의 몰락 후 탄생한 터키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위한 조직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한다. 당시는 전시 상황이었고, 양측 모두 인명 손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2009년 적대를 종식하기 위해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집단학살을 연구하기 위한 국제전문가 위원회 설립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협정에는 외교 관계 수립, 국경 개방 등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양국 의회의 비준 과정에서 문구 변경 등 논란이 빚어져 비준이 중단됐다. 아르메니아는 2018년 이 합의를 공식 철회했다.

터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수십 개국으로부터 집단학살로 인정받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9년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선언하고 4월 24일을 연례 기념일로 정했다.
미국의 상원과 하원도 같은 해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처리했다.
미국 대통령이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40년 만에 처음이라는 게 블룸버그통신의 설명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성명은 가뜩이나 종종 마찰을 빚어온 미국과 터키 관계의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외신의 관측이다.
미국과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지만 터키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을 강행하자 미국이 터키의 미국산 F-35 전투기 구매를 막았다.
또 미국의 적대 세력에 대한 제재를 통한 대응법(CAATSA)에 따라 터키 방위산업청에 대한 수출 허가 금지 등의 제재를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규정할 경우 터키가 자국 내 미 공군기지 사용을 문제 삼거나, 미국 상품에 대한 비공식적인 비관세 장벽을 만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성명이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을 향한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이행한 것이지만 터키를 러시아의 궤도로 더 밀어 넣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CNN방송은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터키와 균열 위험성이 있지만 글로벌 인권 책무를 중시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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