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특수 망칠까 우려해 회의서 은폐 결정…수만 관람객·시민 위험에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한 동물원이 표범의 집단 탈출 사실을 작심하고 숨긴 것으로 드러나 대중의 공분을 샀다.
11일 차이신(財新) 등에 따르면 저장성 항저우(杭州)시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항저우야생동물원 간부들이 회의까지 열고 표범 탈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공안 등 관계 부문이 합동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항저우야생동물원에서 표범 3마리가 탈출한 것은 지난 4월 19일이었다.
직원 2명이 청소를 하러 맹수 구역에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아 표범 3마리가 탈출했다.
그러나 장모 총경리 등은 간부 회의를 열고 곧 다가올 노동절 연휴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관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몰래 표범을 찾기로 결정했다.
항저우야생동물원은 사고 이틀 후인 4월 21일 탈출한 표범 한 마리를 잡았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여전히 잡지 못했다.
동물원 바깥에서 표범을 봤다는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지고 다른 표범 한 마리가 임업 당국에 붙잡힌 5월 7일에야 장 총경리는 표범 탈출 사실을 비로소 당국에 실토했다.
탈출한 표범 3마리 중 한 마리는 여전히 붙잡히지 않은 상태다.
동물원의 사건 은폐로 지난달 19일부터 5월 7일까지 19일 동안 이 동물원을 찾은 고객들과 인근 시민들이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됐다.
이 중 노동절 연휴 기간인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이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만도 9만7천여명에 달했다.
공안 당국은 장 총경리 등 동물원 간부들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비록 한 동물원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중국 관료주의 문화의 병폐를 보여준 전형적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서 "항저우 사건은 바로 관료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이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개도국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경직된 중국의 공산주의 관료 사회에서 거짓 보고나 은폐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중앙의 권력이 말단까지 완벽히 닿기 어려울 정도로 큰 국가인 중국에서는 각 하위 부문 책임자들은 잘못은 숨기고 공은 과장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주석 시절 이뤄진 대약진 운동 때 중국의 각 지방은 식량 생산이 초과 달성됐다는 거짓 보고를 중앙에 올렸는데 이런 허위 정보를 바탕으로 추진된 대약진 운동은 식량 생산의 근거지인 농촌을 피폐화시켜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9년 말부터 본격화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 때도 중국 당국이 신속히 초기 대처에 나서는 대신 곧 다가올 춘제(春節·중국의 설) 분위기를 해칠 것을 우려해 사태 은폐·축소에 급급한 바람에 세계적인 대재난을 막을 소중한 기회를 잃게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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