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북부 토레온서 혁명군이 중국계 이민자 무차별 학살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인종차별·외국인 혐오 용납 안 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혁명 당시인 1911년 5월 멕시코 토레온에서 발생한 중국계 이민자 303명 학살 사건에 대해 멕시코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다.
안드레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북부 코아울리아주 토레온에서 110년 전 학살에 대해 중국계 커뮤니티에 사과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종주의와 차별, 외국인 혐오를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나라와 정부는 늘 평등과 문화적 다양성, 비폭력, 보편적인 형제애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에 참석한 주칭차오 주멕시코 중국 대사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보여준 중국의 지원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주 대사는 "토레온 사건의 그늘이 이제 걷혔다"며 "중국과 멕시코의 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굳건해졌다"고 말했다.
토레온 학살은 멕시코혁명 초반인 1911년 5월 13∼15일 발생했다.
토레온에 진입한 혁명군이 토레온 시내 중국계 이민자들의 상점과 시 외곽 거주지를 습격해 중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멕시코 언론에 따르면 당시 토레온엔 700여 명의 중국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절반에 가까운 30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을 책으로 기록한 작가 훌리안 에르베르트는 최근 EFE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학살이 외국인 혐오와 계급적 분노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50만 명 가까운 중국인들이 미주 대륙으로 이민했다. 멕시코에도 일부가 정착했고 특히 미국과의 국경 지역에 상당수가 자리를 잡았다.
토레온의 중국계 이민자들은 지역 상권을 장악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이는 중국인들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반감으로 이어졌다.
일부 멕시코인들은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불평하고 일부는 중국 이민자들의 경제적 성공을 시기했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에르베르트에 따르면 토레온을 장악한 혁명군 사령관이 "중국인들을 죽이자"고 선동했을 때 군인들뿐 아니라 남녀 주민들도 학살에 동참했다.
학살 후 혁명군과 주민들은 중국인 시신을 놓고 사진을 찍은 후 마차로 옮겨 한꺼번에 묻었다. 중국인 303명 외에 중국인으로 오인돼 살해된 일본인도 5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후 멕시코 내 중국인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고, 중국과 멕시코 간의 외교 갈등으로도 번졌다. 중국이 멕시코 해역에 군함을 보냈다는 루머도 나왔다. 멕시코 혁명정부는 중국에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정국 혼란 속에 배상금 지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멕시코는 불편한 역사인 토레온 학살을 대체로 잊고 지냈다. 추모 조형물조차 없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110년 만에 이뤄진 이번 멕시코 대통령의 사과를 놓고 현지 매체 라디오포르물라는 "대통령이 스페인에 모범을 보인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500년 전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 원주민에 저지른 악행에 대한 스페인과 교황청에 사과를 요구해 왔다.
그는 앞서 이달 초 과거 마야 원주민에 대한 국가의 학대를 사과하는 등 직접 과거사 사과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