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전에 있는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이 이전 대상이 아닌데도 171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세종시에 연건평 4천915㎡ 규모의 신청사를 짓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건물은 주인 없는 '유령건물'이 됐지만, 관평원 직원들은 세종시 이전대상 기관 소속 공무원에게 부여하는 특별분양(특공)으로 수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한다. 관평원은 청사 신축 공정이 절반가량 진행된 단계에서 세종시 이전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통보받고도 공사를 강행했다고 하니 특공 아파트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따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신청사 추진에 나선 관평원이나 정부 기관 청사 이전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예산을 지원한 기획재정부는 '잘 몰랐다'라거나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결국 세종시로 이전하지도 않은 기관의 공무원들에게 특공의 혜택을 준 꼴이다. 국민의 상식에 어긋나는 만큼 반드시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잘못된 행정조치로 거액의 혈세를 낭비한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관세청 산하 관평원이 세종시 청사 건립에 나선 것은 2015년 10월이다. 그러나 2005년 행안부가 발표한 '중앙 행정기관 등의 이전 계획' 고시에는 관세청과 관평원 등 4개 기관이 '이전 제외기관'으로 명시돼 있다. 관세청은 그런데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협의해 관평원 세종청사 신축안을 반영하고 기재부에서 예산까지 따냈다. 세종 신청사 건립을 추진한 관평원이나 이를 반영해 예산을 신청한 관세청은 당시 행안부 고시를 몰랐다고 발뺌한다. 행안부 홈페이지와 국가법령정보센터를 찾아봤으나 거기에는 전문(全文)이 아닌 개정된 내용만 있어 2005년 고시를 알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우리 국가기관 공무원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몇억 원도 아닌 무려 170여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면서 기본적인 사항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행정부의 모든 고시는 관보에 올라간다. 10년 전의 관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검색이 가능하다. 관세청이 관평원 세종청사 추진 과정에서 행복청과 협의한 것도 의문이다. 행복청은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만 담고 있는 '행복도시법'을 관장한다. 수도권이 아닌 대전에 위치한 관평원의 세종시 이전 가능 여부에 관한 사항의 소관 기관이 아니란 의미다. '엉뚱한 사람의 다리를 긁어도 유분수'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산하기관 소속 공무원의 특공을 노리고 일부러 지방기관의 세종시 이전 관련 고시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행복청과 협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는 지점이다.
관평원이 세종 이전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행복청이 2018년 뒤늦게 발견했다고 한다. 행복청은 부랴부랴 행안부와 관평원에 통보했지만 신청사는 이미 절반쯤 지어진 상태였다. 관세청은 뒤늦게 행안부에 고시 변경을 요청했다 퇴짜를 맞았는데도 법무법인 검토 의뢰를 거쳐 건축공사를 강행했다. 행안부는 관세청이 공사를 강행한 사실을 알고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관세청은 지난해 11월 관평원 청사 이전을 포기하고 청사를 기재부에 반납했다. 그 사이에 2017년 5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관평원 직원 82명 가운데 49명이 특공으로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관평원 세종청사는 지난해 5월 완공됐으나 관평원의 이전 시도가 물거품이 되면서 현재 빈 건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세종시 이전 대상인지도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청사 이전을 추진한 관세청과 관평원, 역시 치밀한 검토 없이 건축 허가를 내줬다 뒤늦게 알아차린 행복청, 관련 예산을 승인하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기재부, 청사 이전을 총괄하는 행안부 모두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어느 한 곳에서만 제대로 챙겼더라도 이런 황당한 일이 생겼을까. 복마전이 따로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 공직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거기에 더해 부처 간 통합 행정관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 점검도 필요하다. 관평원 공무원들의 특공 혜택과 관련한 적절한 조치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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