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 관리 소홀·기상 이변·장비 부족·구조 지연 겹쳐
체육당국 소홀 속 지자체 "마라톤으로 돈 벌자" 부작용 노출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어떻게 마라톤을 하다가 한꺼번에 21명이 죽을 수 있지?"
지난주 중국 간쑤(甘肅)성에서 열린 100㎞ 산악 횡단 마라톤 크로스컨트리 경주 대회 도중 거센 비바람을 만나 참가자 21명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올라온 중국 누리꾼 대부분의 반응이다.
14억 명 인구의 중국도 단일 사건·사고에 사망자가 20명이 넘어가면 중대 재해로 간주해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 차원에서 가용 자원이 총동원된다.
그동안 이런 규모의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는 홍수나 지진, 건물 붕괴, 대형 교통사고였는데 마라톤을 하다가 갑자기 21명이 숨졌다고 하니 사고에 무덤덤한 중국인들도 쉽게 납득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인지 지난주 사고가 난 직후부터 이번주까지도 연일 이번 참사의 원인 분석과 더불어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 사고 직후 중국 국가체육총국은 '전국 체육 체계 강화 및 경기 안전관리 업무 회의'를 긴급 소집해 경기 안전 업무를 더욱 확실히 하고 위험 방지 제도를 완비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속 조치로 중국에서는 10여 개의 크로스컨트리 대회가 전격적으로 취소 또는 연기됐다.
산둥(山東)성 저우핑시와 린이시는 이달 말에 열릴 예정이던 산악 마라톤의 연기를 결정했다.
산악 마라톤뿐만 아니라 정기 마라톤도 줄줄이 연기됐다. 저장(浙江)성 위야오, 장쑤(江蘇) 우중, 안후이(安徽)성 황산, 닝샤(寧夏) 인촨 등의 마라톤 행사도 중지됐다.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서구 레포츠인 산악 마라톤이 큰 인기를 끌어왔다.
중국육상협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매년 열리는 마라톤 관련 대회만 2천 개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 전역의 마라톤 대회 참가자만 500만여 명에 달한다. 마라톤 산업 규모만 1천200억 위안(한화 2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다 보니 관련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8년 후난(湖南)성 장자제(張家界)에 열린 국제 크로스컨트리 대회에서 여성 선수가 빗길에 미끄러져 숨지는 등 매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2020년 이후 산악 마라톤 등 대부분의 체육 행사는 중국 국가체육총국이 아닌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 육상 업계 관계자들은 "산악 마라톤이 열리기 전에 더욱 엄격한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21명이 참변을 당한 산악 마라톤 사고는 어떻게 일어난 걸까.
간쑤성 바이인시와 마라톤 대회 본부에 따르면 이번 대회는 오전 9시 출발 총성과 함께 시작됐다.
당일 오후 1시께 고지대 구간인 20~31㎞에서 우박, 폭우, 강풍 등 기상 이변으로 체감 기온이 영하 수준으로 뚝 떨어지고 일부 선수들이 실종되면서 대회가 중단됐다.
이 코스는 오르막길에 바닥이 돌과 모래 천지인데다 낭떠러지라 강풍에 폭우가 내리면서 선수들의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강풍으로 인해 갖고 있던 담요마저 날아가고 빗물로 미끄러워진 바위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 선수들 체력이 크게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위협받았다.
숨진 선수 중에는 중국 마라톤 유명 스타인 량징(梁晶)과 장애인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관쥔(黃關軍)도 포함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처럼 이번 대회에서 참변을 당한 선수들은 대부분 산악 마라톤의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초반에 빠른 속도로 달려 경쟁자들과 격차를 벌리는 전법을 구사해 기상 상태가 나빠졌을 때는 이미 체력이 소진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도 대회 본부 측이 산세가 험해지는 구간에서 대회를 중단하지 않고 지속시켜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매체들은 대회 전에 사전에 기상 악화 경보를 못 했고 바람막이 등 필요 장비와 보급소 준비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기 중지 시간 지연, 구조 인력 부족 등이 21명의 인명을 앗아갔다고 맹비난했다.
사고 당시 구조대가 아닌 인근 지역의 목동이 조난한 선수 6명을 발견해 음식과 따뜻한 옷을 줘서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이 크게 보도되면서 당국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신경보(新京報)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중국에서 급속히 발전하는 마라톤 산업에 경종을 울렸다"면서 "마라톤이 일반 산책 수준이 아닌 인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지나친 상업화는 건강을 오히려 해친다"고 지적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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