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포함 최소 13명 무더기 구금
이유는 '국가안보 위협' 고무줄 잣대
행정·사법·언론 장악해 반정부 시위도 억제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니카라과의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독재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난주 경찰과 사법부 권한을 이용해 무자비한 정적 탄압을 자행했다고 CNN 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야당 지도자 가운데 최소한 13명이 기소돼 그러잖아도 취약한 니카라과의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국가 안보' 위반이라는 불분명한 혐의가 적용됐다.
특히 이들 중 4명은 대선 후보로서 혐의가 확정되면 자격이 박탈된다고 CNN이 전했다.
인권 단체들은 오르테가 대통령이 4연임을 위해 오는 11월7일 총선을 앞두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신호탄은 최대 일간 라프렌사의 부회장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크리스티아나 차모로의 체포였다. 차모로가 무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한 이튿날인 2일 사법당국이 자택을 덮쳤다.
니카라과 검찰은 차모로의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돈세탁을 포함한 혐의를 파악해 지난달부터 수사를 벌여왔다고 밝혔지만, 아직 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CNN의 설명이다.
이어 5일에는 보수 야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아르투로 크루스 세케이라가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마나과 공항에서 체포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흘 동안 5명의 야당 지도자가 체포됐다. 여기에는 또 다른 대선 후보 주자로 크리스티아나 차모르의 사촌인 후안 세바스티안 차모로도 포함됐다.
인권단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오르테가 대통령의 전횡으로 니카라과의 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비판한다.
행정부를 중앙집권화하고, 오르테가 대통령의 충성파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이 대법원도 접수하는 등 민주주의의 기반을 훼손했다. 이렇게 사법부와 군부, 언론 등 국가 운영의 주요 부분을 모두 장악했다.
특히 2018년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변경해 적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승인한 게 결정적이었다. 근로자와 고용주가 내는 돈은 늘었지만, 연금 수령액은 줄어들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정부가 사회복지 프로그램 변경을 취소했지만, 오르테가 대통령 통치 전반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반대 세력과 대화하기보다는 공권력을 앞세워 탄압을 시작했다.
심지어 미주인권위원회(IACHR)에 따르면 친정부 준경찰 조직이 병원 응급실 진입로를 막고 다친 시위대가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복수했고, 시위대가 숨어든 교회도 공격했다.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대학교 역시 탄압을 받았고, 2명이 이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복지 프로그램 변경으로 촉발된 시위에서 최소한 325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오히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법 통과의 명분으로 삼기도 했다.
반정부 시위는 금지됐고, 공공장소에서 국기를 흔드는 행위나 국기 색깔의 옷 착용도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면 반역죄가 되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언론사들은 강제로 문을 닫는 동시에 언론인들은 투옥되거나 추방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면 반역자로 매도된다"라며 "정부가 죄를 만들어 몇 년 동안 감옥에 가둘 수도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오르테가 정부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도 커지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대변인은 지난달 "니카라과 정부가 야당과 후보,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며 "오는 11월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지난 9일 오르테가 대통령의 딸을 포함해 4명의 고위직 관료가 시위 탄압에 연루됐다며 제재를 가했다.
미 국무부는 "오르테가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자신이 없고 권력을 놓칠까 두렵기 때문에 탄압 정책을 펴고 있다"며 "니카라과 국민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국제 사회가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aayy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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