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 전제로 소극적 제언…"정권 간부가 제언 공표 연기 요청"
스가 G7 정상회의에서 "올림픽 개최" 공언해 '선수 치기' 양상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문가들이 내놓은 제언에서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실상 사라진 배경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애초 대회 개최에 꽤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제언 수위가 낮아진 것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올림픽 반대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오미 시게루(尾身茂) 코로나19 대책 분과회 회장 등 전문가 26명이 일본 정부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에 18일 제출한 제언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무관중으로 개최하는 것이 감염 위험이 가장 낮은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견해를 담고 있었다.
제언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 올림픽 개최에 대한 반대 의견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폭 후퇴한 제언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우리들은 대회 개최 여부나 존재 방식에 관해 판단·결정할 입장이 아니다"고 전제하고서 대회를 개최하는 경우에 관해서 의견을 표명했다.
이는 앞서 알려진 전문가 모임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다.
오미 회장은 이달 초 국회에서 출석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올림픽을) 하는 것은 보통 없다"고 말하는 등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고려할 때 대회 개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비친 바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전문가들의 입장 표명에 스가 정권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정황을 19일 소개했다.
오미 회장은 제언 제출 후 1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초의 제언에는 '올림픽 개최의 여부를 포함해 검토하면 좋겠다'는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G7 정상회의라는 국제적인 자리에서 개최를 표명했고 (전문가가) 개최가 옳은지 그른지 검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려고 했으나 스가 총리가 이보다 먼저 개최 의사를 국제사회에 표명하는 바람에 개최를 전제로 의견을 표명하게 됐다는 설명인 셈이다.
오미 회장 등이 대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할 움직임이 앞서 알려진 후 정치권 안팎에서 '의료 전문가 등이 개최 여부를 거론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취지의 반발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스가 총리까지 나서 개최를 공언하자 전문가들이 위축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4월 무렵 전문가들이 논의할 때 일부 참가자로부터 '개최야말로 최대의 위험이다. 감염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만연할 우려가 있는 가운데 개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위험을 고려해 개최할지 어떻게 할지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제언에 반영하려고 검토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미 회장과 정부를 연결하는 창구인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 재생 담당상이 나서면서 제언의 내용이 바뀌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니시무라 담당상이 '오미 회장이 올림픽을 취소하는 것이 감염 위험이 가장 낮다고 얘기한다'면서 주변에 곤혹스러움을 표명했다는 얘기가 전문가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제언에서 올림픽 개최와 관련된 내용이 삭제되고 표현이 순화됐다고 일본 정부의 한 간부는 설명했다.
제언 발표 시점에 관한 의문도 있다.
오미 회장 등이 제언을 국회 회기 중에 발표했다면 야당이 이를 토대로 올림픽에 관해 추궁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기 국회 종료(16일) 후 발표해 사실상 스가 정권을 배려한 모양새가 됐다.
한 전문가는 "'정권 간부가 제언 공표를 연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설명을 오미 회장에게서 들었다"면서 정권의 개입을 암시했다고 신문은 분위기를 소개했다.
스가 정권은 전문가들이 대회 취소를 대놓고 압박하는 상황을 피했으나 이들이 무관중 개최를 최상의 선택지로 제시함에 따라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스가 총리는 경기장에 1만 명 이하의 관람객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구상에 의욕을 보였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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