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대거래소 업무 중단…독일 등도 조사 착수
미국 거래신고제 도입…중국은 범죄소탕식 단속
버블위험 예방·범죄악용 차단·통화주권 수호 등 명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가상화폐가 가치 저장, 자산증식 수단으로 무시할 수 없도록 커지자 각국의 규제와 단속도 본격화하고 있다.
사각지대에 계속 방치했다가는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화폐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지키려는 목적에서 단속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 '무시할 수 없는 자산' 사각지대 둘 수 없다 판단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25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바이낸스의 영국법인 '유한회사 바이낸스마켓'에 "FCA의 동의를 받기 전엔 어떤 규제대상 업무도 하지 말라"라고 명령했다.
바이낸스는 작년 5월 바이낸스마켓을 인수한 뒤 FCA 허가하에 영국 파운드와 유로화로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실행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낸스 측은 바이낸스마켓이 웹사이트 '바이낸스닷컴' 등에서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다면서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독일과 미국, 인도에서 당국의 조사를 받는 상황이다.
독일 금융감독청(BaFin)은 지난 4월 바이낸스가 테슬라 등의 주식과 연계된 토큰을 발행하면서 투자설명서를 발행하지 않는 등 유럽연합(EU) 증권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어 벌금을 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엔 미국 법무부와 국세청(IRS)이 자금세탁과 탈세 등의 혐의로 바이낸스를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도 금융범죄 조사기관인 집행이사회(ED)는 이달 11일 바이낸스의 계열사 '와지르X'가 외화거래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잡고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조사와 관련된 거래 규모는 279억루피(약 4천2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각국이 바이낸스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미 재무부는 1만달러(약 1천128만원) 이상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기업은 반드시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가상화폐가 조세회피 등 불법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별도로 국세청은 세금추징을 위해 가상화폐를 압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하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가상화폐 시장이 완전히 규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바로잡고자 의회와 협력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31일엔 통화감독청(OCC) 마이클 쉬 청장이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규제범위'를 확정하고자 다른 부처와 공조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OCC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쉬 청장은 OCC와 연방준비제도, 연방예금공사가 가상화폐 논의조직을 만들었다고도 설명했다.
현재 미국은 증권의 규정에 충족하는 가상자산은 SEC가 규율하고 교환의 매개로 기능하면 은행비밀보호법 등으로 법정화폐와 비슷하게 규제한다.
법정화폐는 대금 지급이나 채무 변제의 수단으로 법적인 인정을 받는 통화를 말한다.
◇ 권위주의 체제 중국은 아예 범죄소탕식 단속
어느 나라보다 가상화폐를 강력히 단속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금융당국은 지난달 18일 민간의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재차 확인했고 사흘 뒤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는 아예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를 타격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네이멍구자치구와 쓰촨성, 칭하이성, 윈난성 등 비트코인 채굴이 활발하던 대부분 지역에서 채굴할 수 없어졌다.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가상화폐 관련 계정이 차단됐고 검색엔진에선 가상화폐 거래소 검색이 차단됐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달 21일 대형은행과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최대 전자결제 서비스 즈푸바오(付寶·알리페이) 관계자를 불러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계좌제공이나 결제서비스를 제공하지 말라고 사실상 지시했다.
범죄를 소탕하듯 가상화폐를 '일망타진'하는 모습이다.
가상화폐 채굴업자들은 중국을 벗어나 다른 전기료가 싼 지역에서 채굴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란이 대규모 정전사태에 가상화폐 채굴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등 쉽지 않은 상황이다.
◇ 규제명분은 거품위험 예방·범죄악용 차단·중앙은행 통제력 유지
각국이 가상화폐 규제에 나선 까닭은 무엇보다 그 자체로서 사용 가치가 없는 가상화폐에 현금이 쏠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풀려진 가치가 바닥으로 내려앉는 버블 붕괴가 오면 전체 금융 체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비트코인 가격급등은 1600년대 튤립버블과 1700년대 남해버블 등 이전의 금융버블을 넘어섰다"라고 우려했다.
미 SEC도 비트코인을 '투기적 자산'으로 규정한다.
가상화폐가 범죄에 활용되는 점도 단속이 시작된 이유다.
특히 미국에선 지난달 송유관 업체와 세계 최대 정육업체가 랜섬웨어(전산망 복원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사이버 공격 수단) 공격을 받은 뒤 해커에게 가상화폐를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상화폐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속도를 내면서 잠재적 경쟁자인 가상화폐 때리기를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은행 간 협력을 위한 국제기구 국제결제은행(BIS)의 올해 초 조사 결과를 보면 전 세계 중앙은행 86%가 CBDC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며 60%는 기술실험에 들어갔고 14%는 시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기술적으론 CBDC와 가상화폐는 유사하다.
다만 가상화폐는 발행량 등을 통제하는 '중앙'이 없다면 CBDC는 여느 법정화폐와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이 통제하므로 국가로선 후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최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4월 중순 1개당 6만5천달러(약 7천341만원) 가까이 치솟았다가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최근 3만5천달러(약 3천953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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