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국경 넘는 베네수엘라인들…미국행 밀입국 증가

입력 2021-06-29 04:51  

두 번 국경 넘는 베네수엘라인들…미국행 밀입국 증가
중남미 다른 국가 정착했다 코로나 여파로 미국 재이민 택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베네수엘라 초등교사였던 마리아넬라 로하스(54)는 몇 년 전 고국의 경제위기와 사회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남미 에콰도르에서 청소일을 하며 새 삶을 꿈꿨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닥친 후 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는 결국 또 한 번의 이민을 결심하고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근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는 로하스처럼 미국으로의 재이민을 시도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AP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지난 5월 미·멕시코 국경에서 국경순찰대에 잡힌 베네수엘라인은 7천484명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올해 들어선 총 1만7천306명의 베네수엘라인이 미 남부 국경에서 밀입국하려다 적발됐다.
이들이 중미나 멕시코 출신 다른 밀입국자들과 다른 점은 대다수가 중남미 다른 나라로 한 차례 이민했던 이들이라는 것과 의사, 엔지니어, 금융인 등 고학력 전문직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베네수엘라에선 몇 년째 이어지는 경제위기와 정치·사회 혼란 속에 500만 명 이상이 고국을 등졌다.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은 이웃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곳곳에 흩어져 정착했다. 전문직들도 학위와 경력을 모두 버리고 단순노동을 하며 베네수엘라에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대체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이민자들은 지난해 닥친 코로나19 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자리를 잃고 집세를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도 쫓겨나자 일부는 눈물을 머금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행을 택하는 이들도 늘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에 거주하는 30만여 명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에게 합법 체류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미 미국에 들어와 살고 있던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후에 미국행에 나서는 베네수엘라인들도 다른 이민자들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미국 체류 자격을 얻는다.
미국 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국민을 탄압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망명 필요성을 인정받기 쉬운 것이다.
AP통신이 인용한 미 시러큐스대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베네수엘라인들의 망명 신청 중 26%만 기각됐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미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 중 80%가 거부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비율이다.
미국에서의 삶도 탄탄대로는 아닐 테지만, 희망 없는 고국에서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대학에서 석유공학을 전공한 후 칠레를 거쳐 미국으로 재이민한 리스 브리세노(27)는 베네수엘라에 계속 살았더라면 한 달에 50달러를 벌었을 것이라며 "거기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낫다"고 AP에 말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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